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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정아 기자
사람이 살면서 숨기고 싶은 거 하나 없다면, 그게 인생일까요. 저는 열댓 개는 넘는 거 같습니다만. 어쨌든 아내분이 미국 수사 드라마 <csi>를 뉴욕·마이애미·라스베이거스, 시즌별로 본방 사수한다고 해도, 회사 사무실 서랍에 숨겨둔 비상금은 절대 찾지 못할 겁니다. 왜 비상금을 꼭 집에 숨겨두려 하나요. 아마추어같이. 만약 대기업 회장 누구처럼 비상금이 회삿돈을 횡령해 꼬불쳐둔 비자금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검찰이나 경찰이 사무실을 털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언론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압수수색’이라는 용어부터 따져보겠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압수와 수색은 다른 개념입니다. 압수는 어떤 물건을 강제로 빼앗아 보관하는 것이고, 수색은 압수할 물건이나 체포해야 할 사람을 찾으려고 사람의 몸이나 장소를 강제로 뒤지는 것이죠. *수사를 오래 한 검사에게 물었습니다. “장소에 대한 수색을 먼저 한 다음 증거물을 압수하는 것이니, 순서로 보면 압수·수색이 아니라 수색·압수라고 하는 게 맞다.”* <csi>에서 심심하면 칼질을 해대는 사체는 어떨까요. 압수수색영장 말고 검증영장이 있습니다. 사체는 압수가 허용됩니다. 그러나 사체 해부를 하려면 ‘검증영장’이 필요합니다.
압수수색은 ‘밀행성’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건은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이 이뤄집니다. 반면 언론에 노출된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 사건은 압수수색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숨길 수 없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비밀장부(부외장부)는 어딘가 숨겨놓더라도 회사 회계장부는 기본적으로 파기할 수 없겠죠. 게다가 수사 대상자의 주거지나 사무실이 압수수색 대상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통합진보당 서버 압수수색처럼 서버 관리업체가 압수수색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성동격서’가 되다 보니 미처 증거물을 숨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에 저장된 디지털 증거물이 많습니다. 민간인 불법사찰처럼 무지막지한 파괴 장비로 하드를 지워버리지 않는 한 상당 부분 복구가 가능합니다. 검찰 쪽은 “관점의 차이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당사자는 이 자료가 죄가 된다고 해서 파기했는데, 수사기관 쪽에서는 다른 자료에 무게를 두고 압수수색에 들어가는 경우죠.
‘이 잡듯이 뒤진다’는 건 가능할까요. 영화처럼 압수수색 영장을 코앞에 들이민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뒤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로비부터 회장실이 있는 26층까지 모조리 뒤지겠다는 식의 영장은 절대 발부되지 않습니다. ‘대물강제처분’은 법에 의해 엄격히 제한을 받습니다. 판사는 검사가 청구한 영장 가운데 압수수색 대상이나 장소가 구체적이지 않거나 수사에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해당 압수수색 청구 내용을 삭제한 채 영장을 내주기도 합니다. 검사들 말로는 이를 “그어버린다”고 합니다. 영장에는 이세영 기자 노트북의 이상한 동영상 파일만 압수수색하라고 적혀 있는데, 음탕한 쌍꺼풀을 지녔다는 이유로 김성환 기자의 노트북까지 현장에서 뒤질 수는 없다는 거죠.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csi></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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