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왜 겨드랑이 털은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라지 않을까’, ‘자라는 방향도 일정하고’ 등의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질문이 채택된다면 가명으로…. (다딩언니)
스스로를 ‘평범한 여대생’이라고 소개한 다딩언니님, 반갑습니다. 친구들과 식사 자리에서 ‘여름 제모’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엇이든’ 코너를 떠올리셨다고요. 독자가 시키면 합니다. 바로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경북대학교 모발이식센터에 질문의 취지를 설명했더니, “정말 기자 맞느냐”고 몇 번이나 확인하더군요. 황당했던 모양입니다. 어렵게 김정철 교수와 연결이 됐습니다. 김 교수는 “원래 그렇다”고 답합니다. “발생 단계에서부터 온몸의 털은 부위별로 종류가 아예 다르다.” 머리카락과 겨드랑이 털, 눈썹과 팔다리의 털, 음모까지 아예 종자가 다른 털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겨드랑이 털이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라지 않는 이유는, 단지 머리카락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네요. 자료를 더 뒤져봤습니다.
모발이식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모발이식은 1804년의 일이라고 하는군요. 한 과학자가 동물실험에서 털이 남아 있는 피부를 이식했더니, 그 털이 잘 자라더라는 겁니다. 1950년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 바스키 박사가 음모와 겨드랑이 털을 환자의 두피에 이식하는 시술을 했는데, 그 털이 원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어 1959년 미국의 노먼 오렌트라이히 박사는 각각의 털은 고유한 성질이 있고, 다른 곳에 옮겨 심어도 그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공여부 우성’(Donor Dominance) 개념을 정립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겨드랑이 털을 두피에 옮겨 심더라도 그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끝까지 겨드랑이 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길게 자라지도 못하고 꼬불꼬불하게 된답니다. 또 머리카락을 눈썹에 이식하는 경우에는 계속 자라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발’을 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토양보다는 작물이 우선’이라는 말로 표현하더군요. 말하자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매끈한 겨드랑이가 아름답다’는 강박이, 그것도 여성에 대해서만 주입된 것일까요? 에 따르면 고대 로마의 여성들도 조개껍질을 이용해 겨드랑이 털을 한올 한올 뽑아냈다는군요. 19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면도기 회사가 “불쾌한 털의 제거는 필수”라는 카피와 함께 털 하나 없는 겨드랑이를 드러낸 여성 모델을 광고에 등장시키면서 이 경향은 본격적인 유행으로 굳어집니다. 역사학자 크리스틴 호프는 이를 “대대적인 겨드랑이 캠페인의 시작”이라고 규정했지요. 결국 남성들이 가진 ‘시각적 욕망’이 문제였군요. 모든 남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사과할게요. 미안합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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