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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왜 절정의 순간에 꼭 깰까요?

[독자와 함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록 2011-08-24 15:14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윤운식

한겨레21 윤운식

Q. 꿈속에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꿈은 왜 절정의 순간에 꼭 깰까요?(정병진)

A. 질문의 의도와 내용 파악이 우선일 듯합니다. 독자님이 말씀하시는 ‘절정’은 무엇일까요.

“며칠 전 아이유가 나오는 꿈을 꿨는데, 크크. 일단 내가 고딩이었어요.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데 아이유가 술 한잔하자는 거였어요. 미성년자가 웬 술이지요. 으히히. 술 한잔하고 분위기가 좋아서 하는데 잠에서 깸. ㅜㅜ.”(인터넷 아이디 컵)

혹시 이런 내용 맞나요. 여기에 대한 정답은 이미 다른 분이 하고 계시네요.

“아이유 불쌍.”(아이디 쉐비루비)

혹시 이런 절정입니까.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한 걸음 남겨놓은 상황이거나 FC 바르셀로나의 메시에게 빙의돼 누캄프의 10만 관중 앞에서 5명의 수비진을 농락하고 1대1 노마크 찬스를 맞이한 순간. 다 큰 줄 알았는데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이라든지, ‘내 다리 내놔라’ 하면 쫓아오는 귀신에게 잡히기 일보 직전.”

어떤 상황이든 좋습니다.

절정의 순간에 꿈은 왜 깰까,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강신익 인제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는 진지하게 답합니다.

“잠을 잘 때 뇌는 쉬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계속 합니다. 꿈은 무의식의 신호로 이뤄지는 데, 그 비현실이 극한에 이르거나 통제불능이 되기 전에 전두엽에서 통제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절정의 순간에 깨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신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도덕적 감정의 신호겠지요.”

강 교수는 조심스럽게 “꿈에 대해서는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꿈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뇌에서 이야기를 맡고 있는 부위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는,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한 신호”라는 말도 더합니다. 꿈조차 사회적 학습에 의해 제약받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마감의 분초를 다투는 금요일, 어젯밤을 꼬박 새운 ㅈ 기자가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한마디 거듭니다. “렘수면(몸은 자고 있으나 뇌는 깨어 있는 상태의 수면) 상태에서 몸은 깨어날 준비를 하는 것, 그리고 가장 생생한 부분인 절정의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럴싸합니다. 그의 분석도 일리가 있습니다. 꿈에 대해 확실히 밝혀진 게 없다니, 아직은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 셈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도 최근 절정의 순간에 꿈을 깬 경험이 있네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던 저는 위기감을 느껴서 산골마을의 한 초등학교로 보이는 건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어딘가에 숨어야 하는 그 순간, 하필 큰 볼일이 보고 싶어져서 화장실을 찾아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스로 발견한 화장실,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변이 가득. 또 다른 칸의 문을 활짝 여니, 더 가득. 다른 칸으로 달려가니, 아예 넘쳐. 다른 칸은 열자마자 변이 튀어올라, 그러다 손에, 얼굴에 묻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만약 제 전두엽에서 균형을 잡아주지 못했다면(고마워요, 전두엽님!). 흠, 흠. 저는 꿈에서 얼마나 변을 당했을까요. 절정의 순간 깨어나는 것이 꼭 안타까운 일만은 아닙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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