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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지아이 조

[맛있는 뉴스] 부글부글
등록 2011-06-08 17:47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김봉규

한겨레 김봉규

미군은 ‘지아이 조’(G.I. Joe)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미 해병대는 세계 최강으로 평가된다. 한국 해병대처럼 모자 안에 책받침을 썰어넣어 칼날처럼 팔각모에 각을 잡지 않아도, 뭔가 ‘간지’난다. 격투기 칼럼니스트 이용수씨의 블로그(blog.daum.net/vanmandera)를 보면, 지아이 조의 영화 같은 활약에 심장이 뛴다. 지난 5월29일(한국시각) 열린 종합격투기 대회 ‘UFC 130’에서 브라이언 스탠(31)이 브라질 선수 조르지 산티아구를 2라운드에 펀치로 눕혔다. 스탠은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장교로 이라크에서 근무했다. 2005년 이라크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6일간 총탄을 견디고 공습을 위한 지상좌표를 제공했다. 무공훈장을 받았고,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직접 거론하며 축하했다. 이후 프로 종합격투기 선수가 됐다. 그가 입장할 때 링 아나운서가 외쳤다. “올 아메리칸(All American), 브라이언 스탠!” 지아이 조 멋져.

브라이언 스탠도 고엽제를 뿌려봤을까? 존재하지 않는 대량파괴무기(WMD)로 미군에 점령당한 이라크도 한 가지는 행운이었다. 고엽제를 뿌릴 나무와 풀이 없었다. 정의롭고 멋진 지아이 조는 몰래 한국에서 고엽제를 뿌렸다. 지아이 조는 미군에 대한 한국민의 신뢰에도 강펀치를 날렸다. 주한미군은 1960년대 말까지만 비무장지대(DMZ)에 고엽제를 살포했다지만, 고엽제 살포 작업이 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는 주장이 민간인에게서 제기됐다.

나쁜 건 주둔군지위협정(SOFA)이다. 경북 칠곡군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가 대량 매립됐다는 의혹이 불거지지만, 한국 정부는 힘이 없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탓이다. 주둔군지위협정에서 미군기지는 한국이 미군에 제공한 ‘공여지’로 간주된다. 기지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도 원상회복과 보상 의무가 없다. 한국 관료들은 소파에 앉아서 지아이 조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 지아이 조가 고엽제를 뿌린 한국 땅에서, 지아이 조가 ‘주적 북한’을 지켜주시는 덕에, 나는 편안하게 소파에 기대서 UFC 130에서 지아이 조 출신 격투기 선수의 시합을 시청하며 박수친다. 이래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그토록 외쳤을 게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대학생 등록금을 지원할 여유도 한국 정부엔 없다. 지아이 조를 위해서는 예외다. 2003년 이후 반환된 기지 48곳 중 절반가량인 22~23곳에서 2차 오염 정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추가 반환될 기지의 치유까지 고려하면 전체 오염 회복 예산은 3천억원을 넘어설 것이다. 사건 초기 주한미군은 직접 오염 조사를 거부하고 서류 조사를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 두 가지 조사를 병행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지아이 조는 세계 최강이다. 주먹도 세지만, 뻔뻔함이 주먹 세기를 조금 앞서는 것 같다.

사족. 적잖은 군사전문가는 미 해병대가 세계 최강이라는 데 의문부호를 단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과달카날에서 열심히 싸웠지만 독일군보다 좀 처지는 일본군을 상대했다. 이후엔 베트남에서 게릴라들에게 패배했다. 반면에 한국 해병대는 열악한 장비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에서 싸웠다. 지아이 조 ‘구라’도 보통은 아닌 듯.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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