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에이 씨, 뭐 이런 질문이…’라고 욕하려다 질문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에서 기사 쓰기 시작한 이래 최고로 날카롭고 생산적인 질문입니다. 일상적으로 ‘욕플’을 달고 사는 기자로서 궁금하기 짝이 없군요.
‘辱’(욕)이라는 글자의 탄생은 농경시대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네이버 한자사전은 ‘辰’(진)자와 ‘寸’(촌)자가 합쳐 만들어졌고, 이때 ‘진’자는 ‘농경에 좋은 시절’을 뜻하며 ‘촌’자는 ‘법도’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농사의 때를 어긴 자를 죽이고 욕보인 것에서 ‘욕보이다’는 뜻을 가진 ‘욕’자가 탄생했다는 겁니다.
정춘수씨는 (부키 펴냄)에서 다른 해석을 내립니다. 귀족적 시각이 반영된 글자라는 겁니다. ‘촌’자는 벌린 손의 손가락을 표시한 형태이므로, ‘욕’자는 조개칼을 잡은 형상이라는 거죠. 조개칼을 들고 농사나 지어야 하니 ‘치욕스럽다’는 관념이 반영된 글자라고 설명합니다. 고대에 욕되지 않으려면 손에 무기나 주술적 도구를 들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국립국어연구원 홈페이지를 뒤졌습니다. ‘욕을 먹고 살아야 오래 산다’는 속담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뜻은 다릅니다. 북한 속담으로 분류돼 있는데, ‘남에게 욕을 먹었을 때 위로하거나 스스로 참고 웃어넘길 때 하는 말’이라는군요.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를 뒤져보니, 한 네티즌은 의 ‘천지편’(天地篇)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합니다. 의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는 구절은 ‘오래 살수록 욕됨이 많다’는 뜻입니다. 적잖은 인터넷 정보가 그렇듯, 누군가 작성한 잡글을 마구 퍼나른 것으로 보입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명제 이론에 따르면, ‘A면 B다’라는 명제가 참일 때 함께 참인 문장은 ‘대우’ 명제인 ‘B가 아니면 A가 아니다’입니다. ‘B이면 A다’라는 ‘역’명제는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명제를 입증하려고 ‘오래 살면 욕 많이 먹는다’는 역명제를 근거로 댄다면 말이 안 되죠.
이 민간요법의 효능을 검증할 방법은 실제 사례 연구밖에 없을 듯합니다. 일단 역대 최고 권력자를 살펴봤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90살에 숨졌으니 장수한 셈입니다. 장면 전 총리는 67살, 박정희 전 대통령은 62살에 숨졌고, 최규하 전 대통령은 87살에 숨졌습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각 85살, 63살에 숨졌습니다. 이제 각각의 인물들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욕을 추정해봅시다. 독자님, 슬슬 감이 오십니까? 현직 대통령님의 경우도 추정되시나요?
아무튼 저 같은 기자들은 좀체 동의하지 않을 명제입니다. 지난 4월 원광대 연구를 보면, 언론인의 평균수명은 67살로 최하위 직군에 속합니다. 1위 종교인의 평균수명에 비해 무려 13년 짧습니다. 기자는 욕 많이 먹기로 유명한 직업입니다. 욕 먹으면 오래 산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대체 지금까지 제가 먹었던 ‘한걸레’ 운운하는 그 욕은 다 어떻게 된 걸까요? 사실은 속으로 찬양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제 동료에게 ‘왜 욕먹으면 오래 살까요?’라고 물었더니 ‘네 수명 방금 전에 5분 연장됐다’고 답문자가 왔습니다. 이건 뭘까요? 아아, 헛갈립니다. 답변 맘에 안 드시면, 욕 많이 해주세요.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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