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 한글이나 영어의 알파벳에는 ‘이응’(ㅇ)과 ‘오’(O)라는 원형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자에는 왜 원형이 없을까요? 상형문자인 한자는 태양이나 눈이나 입 등을 뜻하는 글자에 원을 넣는 게 더 좋았을 텐데요? ^^ (CYON)
A. 아,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중국에도 해가 뜨고, 수레바퀴가 굴러다니고, 달걀프라이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왜 동그라미에 인색했을까요? 충청도의 한 서당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훈장님은 웃기만 합니다. 쉬운 문제가 아닌 모양입니다. “특별하게 답이 떠오르지는 않네요” 합니다. 훈장님은 좀더 생각하더니, “한자로 전화번호를 적을 때, 이를 테면 ‘二二0-五八三0’으로 적을 때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긴 합니다. 간혹 사찰이나 한의원에서 낸 달력에 그렇게 적힌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여기서 ‘영’(0)은 물론 한자가 아닙니다. 아마 훈장님은 인도에서 만들어진 숫자 0을 한자로 착각한 듯합니다.
서울시내의 한 사립대학 중문과 교수에게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교수는 “안 그래도 나도 그게 궁금했다”고 하더니, 한 가지 가설을 내놓았습니다. 붓으로 한 획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어려웠던 게 이유일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이야 붓이 좋아져서 낫겠지만, 고대에는 짐승 털로 만드는 붓의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었겠지요.
이동국 예술의전당 학예연구사도 한 가지 ‘추측’을 더 얹었습니다. 중국의 고대 서체인 갑골문자나 전서에는 동그라미나 타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ㅇ’은 사라집니다. 갑골문자에서 시작된 한자는 수천년 동안 정제 과정을 거쳐 당나라 시대 서체인 ‘해서’(楷書)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해서는 중국의 ‘서체 종결자’였던 셈이지요. 그 다음 세대는 사실상 과거 서체를 재해석하는 데 그쳤다고 합니다. 해서에서는 점과 획으로 모든 한자 표현이 가능하도록 고안됐답니다. 여기서 ‘O’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겠지요.
추측 한 가지 더. 최남규 전북대 중문과 교수는, 중국에서는 4각의 틀 안에 한 글자가 자리잡는 모양새를 취한답니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네모 틀 안에 문자를 넣으려 했던 것 같다고 합니다. 그 안에 ‘ㅇ’은 균형을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합니다.
교수들의 말씀을 듣다 보니, 2개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우선 한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훈민정음에서는 왜 ‘ㅇ’이 살아남았을까? 최남규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 발표문을 보라고 합니다. 내용을 보면, 세종이 훈민정음의 28자를 고전(古篆), 즉 중국의 옛 서체를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고대 중국 서체에서는 ‘ㅇ’ 모양이 살아 있었으니까요. 둘째, 한자에는 왜 ‘△’도 없을까? 여기에는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이동국 학예연구사는 “굳이 말하면 한자 부수의 하나인 ‘厶’(마늘 모) 모양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한글에도 △은 사라지고 ‘ㅅ’만 남았네요.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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