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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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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촌스런 청혼, 순한 반지

등록 2008-06-26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지민


“정 니 맘대로 하려거든 호적을 파라.” “….” “글쎄, 집을 나가래도.” “….”

그렇게 눈물과 침묵 투쟁으로 결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너무 몰랐던 거다. 결혼이라는 건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것이고, 서로 살아온 방법과 문화가 다를 때 그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산다는 건 사랑만 하면 되는 연애랑은 완전 다르다는 걸 그때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쩜, 지금이라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15년 전 부산 태종대에서의 그 촌스런 청혼(그때는 감동과 환상 그 자체였겠지만)과 18K 금반지. 그때는 그거면 결혼의 조건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 따윈 내 결혼의 조건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재산 같은 것은 살면서 늘어가는 것이니까.

살다 보니 부모님 말씀이 맞기도 했다. 때론 삶이 버겁기도 하고, 남과 비교하며 불행해하기도 하고, 이 사람은 왜 내 인생에 들어왔나 뒤늦게 어리둥절해지기도 하고. 하지만 소중한 내 아이들이 있고,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는 남편을 보면, 내 생각도 그리 틀리진 않았다.

그때 하나씩 나눠가진 반지는 지금도 남편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고, 난 목걸이에 달고 다닌다. 예물이라는 이름으로 나눠가진 보석들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라졌지만, 아직 남아서 순하게 반짝이는 반지를 보면 내 결혼생활도 저렇게 순한 빛으로 반짝인다고 믿는다.

앞으로 몇 번의 15년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 세월이 지나면 금인지 구리인지 알 수 없는 빛이 되겠지만,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반려이자 버팀목인 남편과 같이 우리의 반지들도 그렇게 우리 곁에 같이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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