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란희

엄밀히 말하자면 이 물건은 ‘나의’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엄마’의 오래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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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도 더 됐을 어릴적,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트럭 기사였던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옹기를 운반하셨다. 지금 기억에도 어린 나는 눈이나 비가 오면 아버지 걱정에 안절부절못했던 것 같다. 부산에 드물게 내리는 눈은 다른 아이들에겐 축복이었지만, 나는 눈 때문에 사고가 날까 불안해하며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시기만 기다렸다. 엄마 말씀처럼, 벌어오는 것보다 까먹는 것이 더 많은, ‘어리숙한’ 아버지의 잦은 사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옹기를 운반하신 날은 금이 가거나 깨진 옹기들을 집에 갖고 오시곤 했는데, 이 세 쌍둥이 옹기는 매끈하니 온전한 것이었다. 아마 앙증맞아서 들고 오신 것이 아닌가 싶다. 쓸데없는 것 갖고 왔다고 타박하던 엄마도 어느새 그걸 안방 서랍 위에 얹어놓으셨다.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온전한 것이 없는 부엌 양념통 대신 번드르르한 이 세 쌍둥이 옹기를 고춧가루·깨소금·설탕을 담는 용기로 쓰지 않는 것인지. 엄마는 그것을 안방 서랍 위에 모셔놓기만 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나는 짐작하게 되었다. 그것이 팍팍한 살림에서 실용적인 용도가 아닌 심미적 용도의 물건을 하나쯤 지니고 싶은 엄마의 유일한 사치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엄마는 이 옹기를 꼭 챙기셨다. 서른 살이 넘어 집에서 독립해 나올 때 나는 오디오와 책상, 그리고 엄마의 이 옹기를 들고 나왔다.
아직 엄마가 이 옹기를 기억하고 계신지는 알 수 없는데, 이제 한 곳에는 500원짜리, 또 한 곳에는 100원짜리, 다른 한 곳에는 지폐를 모으는 비자금 저금통이 된 이 옹기가 내게는 그 생긴 모양처럼 힘겹던 시절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이 같이 얽혀 있는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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