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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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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따뜻한 쥐불놀이

등록 2008-03-07 00:00 수정 2020-05-03 04:25

▣ 편경미

1년에 한 번씩 아이들과 밤늦도록 불놀이를 하는 바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대보름이었다. 가족 모두가 복장을 재정비하고(내복 입고, 장갑과 모자 챙기고) 고구마와 감자를 포일에 잘 싸서 가방에 넣고 제일 중요한 쥐불놀이 기구도 챙기고. 차를 놔두고 걸어가야 하므로 편한 신발을 챙겨신고서 그렇게 우리 가족은 대보름 달집 태우는 행사에 참여한다.

경북 경산 한적한 시골길에 어디서 이 많은 차가 몰려왔을까 싶을 만치 차와 사람이 꽉 차고 넘친다. 달집을 어느 정도 태우고 나면 불길이 뜨거워서 어린아이들이 가까이 갈 수 없으므로 눈치껏 작은 불씨를 하나 꺼내와 조금 떨어진 곳에 불씨를 피운다.

아이들을 시켜 작은 막대기와 지푸라기를 걷어오게 하고 나와 남편은 호호 하며 불씨를 피운다. 불이 어느 정도 익으면 아이들에게 나무 작대기 끝에 불을 붙여서 하나씩 쥐어주고 밤하늘을 향해 휘휘 돌리면 우리만의 불놀이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가방에 담아온 고구마와 감자를 불 밑에다 밀어넣고 본격적인 쥐불놀이를 시작한다. 지난해까지는 작은애가 어려서 큰애만 신이 났었는데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작은애도 신이 나서 쥐불놀이 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불통은 5년 전에 대보름 달집 태우기 행사에 처음 갔다가 얻은 것인데 그때 재미있어서 챙겨뒀다가 해마다 유용하게 쓴다.

시간이 익어갈수록 양식도 익어간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고구마와 감자를 꺼내면 솔솔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이런, 어디서 조무래기 녀석들이 몰려왔지? 서로 맛보고 싶다고 야단이다. 우리 아이들, 으쓱하면서 조금씩 자기만의 방식으로 평등하게 나눠준다.

어, 이게 아닌데 싶다. 내 자식들 먹이려고 싸온 건데 내 자식들 입에는 몇 번 안 들어가고 딴 애들 입으로 다 들어간다. 하지만 그런 주위 친구들을 보며 행복하게 웃는 우리 아이들을 보니 괜스레 내 얼굴이 달아오른다.

승현아, 민경아! 그렇게만 자라다오. 늘 다른 사람 배려하고 나눠주는 기쁨이 뭔지 아는 마음 따뜻한 사람으로 말이다. 해마다 이렇게 엄마, 아빠 부끄럽게 만드는 너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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