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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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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투박한 책꽂이가 좋아

등록 2007-11-16 00:00 수정 2020-05-03 04:25

▣ 장은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스물셋 대학생이라면 예쁜 화장대도 방에 있겠거니 하겠지만, 사실 내 방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낡은 책꽂이이다. 얼굴보다는 마음을 가꾸라는 뜻으로 만들어주신 것일까 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조심스레 헤아려본다. 이 책꽂이는 올해 스무 살이 되기까지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함께해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머니가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총각 선생인 아버지와 만나신 것은 외할머니의 안목이 컸다고 한다. 그저 ‘등짝 넓은 사내 만나서 우리 딸 등에 업혀 보내겠다’고 늘 말씀하셨다더니 팔 힘 좋고 건장한 기술 교사이신 아버지를 사위로 맞이하셨다. 담 너머 옆집 인연으로 만나신 두 분의 첫 살림은 셋방살이로 시작하셨다. 보행기가 조금만 움직여도 벽에 부딪히던 좁은 방에서 3년간 푼돈을 모아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갈 때, 아버지는 내 집 마련 기념으로 직접 목재를 구하고 톱으로 잘라가며 이 책꽂이를 며칠간 땀을 흘려 만드셨다고 한다.

튼튼하라고 두껍고 투박하게 만든 책꽂이가 맘에 안 들던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 집에 가면 있는 알록달록한 컬러 박스가 부럽기만 했다. 그때는 매일 귀찮지만 억지로 써야 했던 일기장과 초등학생용 위인전 전집을 꽂아두던 책꽂이에,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지금은 대학교 전공 서적을 두게 되었다. 맨 아래에는 어머니 몰래 비상금을 모아 장만하셨다는 아버지의 애장품 1호인 80년대 레코드판도 한가득 지난 시간을 간직한 채 보관돼 있다.

책만큼은 읽고 싶은 것이라면 아낌없이 사주시던 아버지는 이제 쉰의 나이를 넘어 예전보다 이마도 넓어지셨다. 그런 아버지의 뜻을 나는 잘 알고 있는 걸까. 외모 치장에만 관심이 많은 요즘, 겉멋보다는 속멋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어느 책을 꺼내어 읽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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