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송이 서울 관악구 봉천2동
자고 있는 딸아이를 작은방에 눕혀놓고 오랜만에 안방 대청소를 했다. 큰맘먹고 한 청소인지라 창문을 활짝 열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롱 옆 귀퉁이에서 옷가지를 몇 개 치우고 나니 노래 테이프가 가득 담긴 상자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든 테이프들을 바라보자 내 가슴은 어느새 15년 전 앳된 여고생 시절로 날아가고 있었다.
낡은 공테이프 두 개. 그러나 이것은 공테이프가 아니었다. 뒷면에는 볼펜 글씨로 이 테이프에 담긴 노래와 가수를 적은 목록이 정성스럽게 적혀 있고, 옆면에는 예쁘게 꾸미려고 하트 스티커도 몇 개 붙여놓았다.
이것은 내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직접 녹음을 해서 만든 ‘나만의’ 테이프였다. 요즘이야 좋아하는 노래를 몇백 곡씩 다운받아 MP3 플레이어에 저장해놓으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지만, 옛날엔 좋아하는 노래만 듣기에는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이 테이프를 완성하는 데 거의 세 달이 걸렸다. 우선 녹음하고 싶은 노래 목록을 정리해서 벽에 붙여놓는다. 그리고는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늘 초긴장을 해야 한다.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에라도 라디오 DJ가 다음 노래를 소개하는 멘트가 들려올라치면 나는 손에 남아 있는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온몸을 날려 방으로 달려갔다. 제발! 나와줬으면 하고 몇 주 동안 기다렸던 노래가 지금 막 흘러나오고 있는데, 몇 초의 차이로 녹음하지 못했을 때의 안타까움이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다.
그렇게 녹음한 노래들이 이범학의 , 시인과촌장의 , 조갑경의 등등이다. 가슴 여리던 여고생의 애간장을 녹이던 노래들. 그날 나는 결국 청소를 끝내지 못하고 노래를 듣느라 오후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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