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선 광주시 남구 주월동
아마도 40년이 넘은 분첩을 기억하는 가족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것을 20여 년 동안 이사갈 때조차도 깊숙이 간직했다. 언제나 이사한 날은 화장대에 꺼내놓고 바라보곤 했다. 이 분첩을 수십 년 동안 간직한 내 정성엔 어떤 변명도 붙일 수 없다. 일종의 수집벽은 아니나 집착심리이다. 어머니가 쓰시던 이 분첩은 여자로서의 인생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징표일 것이다. 이 분첩을 상징적으로 간직하는 것은 어머니의 일생에 바치는 내 헌사와도 같다.

어머니는 육남매를 키우며 늘 한복만 입고 계셨다. 그러면서 가게 한 귀퉁이에서 뜨개질 기계를 붙들고 계셨다. 먼지가 날리는 와중에 꼬박꼬박 분을 바르고 한복을 입고 계신 모습이 의아했다. 항상 임신 중이셨기에 배를 가리려고 입으신 한복이었단 걸 조금 지난 뒤에 알게 됐다. 그러나 이 분첩을 애용한 이유만은 어린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당시 미모가 남에게 뒤지지 않던 어머니가 분을 발라 돋보이고자 했던 건 일종의 자존심이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그런데 이 분첩도 할머니가 물려주신 것임을 귀동냥으로 듣고는 내가 이어서 간직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먼지 날리는 뜨개질 가게에서 키운 우리 육남매는 도회지로 나와 각자 행복의 길로 나섰다.
오빠는 예전부터 어머니의 분 냄새가 싫었다고 고백했다. 오빠가 생각하던 ‘어머니상’은 희생과 순종으로 가족을 먹여살리는 어머니였나 보다. 어머니가 식사 시간에 반찬 냄새 대신 분 냄새를 풍긴다며 진저리를 쳤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희생이란 대의명분에 충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당시의 오빠는 반항했고 나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러나 가족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와 희생이 동반하는 것인가 보다. 오빠의 사업을 지원해주고 그 빚까지 떠안은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이런 뒷바라지에 몰두하느라 쌍꺼풀이 늘어진 나이가 됐고, 분첩이 어디 있는지도 잊어버린 듯하다.
요즘에는 내가 간직한 분첩보다 더 곱게 갈린 분이 지천에 널렸다. 내가 이 분첩을 간직한 이유는 어머니의 생에 대한 경외이자 지난 시절의 추억 때문인 듯하다. 이 분첩을 내 아이에게도 물려줄 것이다. 여자의 희생으로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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