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주 서울 용산구 효창동
격동의 80년대. 전자계산기가 귀하던 그 시절에 주산은 상업 계열 학생들에겐 필수과목이었다. 두뇌개발에 효과적이고, 사회에 나가서도 쓰임이 많은 분야라는 인식 때문이었는지 당시 국민학생(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주산학원은 선풍적인 인기였다.
인기가 좋은 덕분에 주산학원은 우후죽순 생겨났고, 난립하는 학원들 사이에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인지, 내가 다녔던 학원에서는 국가공인 주산 자격증을 따도록 유도했다. (그 당시에도 자격증을 딴 아이들의 이름을 학원 앞에 크게 내걸어 광고를 했고, 그 효과 덕분인지 학원은 어린 학원생들로 넘쳐났다.) 당시 주산 자격시험에는 주판을 이용한 가감승제(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계산과 암산, 전표산(숫자가 쓰인 소책자를 한 장씩 넘기며 더해 답을 구하는 과목) 등이 있었는데 국민학생이 하기엔 만만치 않던 과목들이었다.
이것은 만 10살에 처음으로 딴 국가 공인 자격증으로 급수로는 제일 낮은 3급이지만,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는 큰 의자에 앉은 나이 어린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상업 계열 학교의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시험을 쳐 당당히 딴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급변하고, 컴퓨터의 보급으로 주산의 필요성이 줄어들다 보니 주산 자격증을 관리하던 상공회의소는 주산 자격증을 폐지하는 대신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대거 신설했다. 덕분에 내 생애 첫 자격증은 이력서란에 쓸 한 줄의 가치도 가지지 못한 채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되어버렸다.
주택가에 붙여진 주산학원 광고를 보면서 요즘 두뇌개발에 좋다며 다시 주산이 유행한다는 말에,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졌던 주산 자격증을 찾아보게 되었다. 지금은 따고 싶어도 딸 수 없는 이 자격증이 주산의 유행에 힘입어 다시 부활할 날이 올까 하는 엉뚱한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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