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독자 윤영래(37)씨에겐 <한겨레21>과 월드컵에 얽힌 일화가 있다. 2002 월드컵이 끝난 어느 날, 그는 유럽의 한 바에 앉아 후배가 보내준 <한겨레21>을 읽고 있었다. 잡지에 게재된 월드컵 관련 기사로 인해 자연스레 옆자리의 독일인과 신나게 축구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 독일인이 “차범근처럼 위대한 선수가 왜 조 추첨 같은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냐”고 물어와 당황했다. 박지성, 이영표 선수보다 훨씬 오래전 유럽 땅에 족적을 남긴 거인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국내 축구계의 설익은 풍토를 보여주는 것 같아 그는 잠시 화끈거렸다고 한다.
그는 유럽에서 공부를 하면서 <한겨레21>을 감질나게 봐야 했다. 56K 모뎀과 비싼 통신요금 앞에선 인터넷 접속도 어려웠다. 고육지책으로 ‘새창에서 열기’를 이용해 수십 개의 기사를 모니터에 띄운 뒤 접속을 끊고 맥주를 홀짝이며 기사를 탐독했다. “대학 시절엔 주머니 사정 때문에 매주 보기 어려웠고요. 정기구독은 1년여 됐습니다. 가끔 집으로 사들고 갔더니 감질난 아내가 구독하자고 말을 꺼냈죠.” 친환경 비료를 수출하는 무역업을 하는 탓에 해외 출장이 잦은 그는 출장길에 잡지를 들고 가고 싶지만 아내의 저지에 막혀 몸만 떠난다. 가끔 이웃은 배달된 잡지를 가져가버린다. 감질나는 구독기는 현재진행형이다.
“600호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를 펼쳐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목이 던져주는 중압감을 여전히 기억한다. 잠자리 머리맡에 두고 괜히 딴 호수나 딴 책을 들척이며 한참을 외면했다. “가사는 ‘아내를 돕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평소 곧잘 말하면서 현실에서는 잘 지키지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600호를 찬찬히 읽으면서 생활을 되돌아봤다.
“중국 출장 중 알게 된 곳을 소개할게요.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석포라는 항구도시입니다.” 정해의 남해 원정과 관련된 곳으로 명대의 모습이 아름답게 남아 있고, 맛있고 값싼 해산물 요리가 지천에 널려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초원학교’가 양산한 <한겨레21> 예비 여행자들을 혹하게 하는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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