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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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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오래된물건] 복제 ‘야매’ 인형, 토토로

등록 2006-05-19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정옥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1990년대 중반 고교 시절 나의 제2외국어는 일본어였다. 어느 날 일어 선생님이 시청각교실에 모이라는 전갈을 보내왔다. 이윽고 수업시간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준비해온 시청각자료를 틀었는데 그건 바로 ‘토나리노 토토로’, 다시 말해 <이웃집의 토토로>였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아 ‘아니메’가 흔치 않던 시절, 비디오에 자막도 없었지만 여고생들은 이내 토토로의 세계에 빨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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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야.아.아.악. 너.무.귀.여.워.” 누가 여고생을 보고 말똥이 굴러가도 웃음이 나고 낙엽이 떨어져도 눈물이 나는 종들이라 칭했던가. 역시나 3% 부족한 표현이다. 비 내리는 날 우산을 쓴 채 버스 정류장에 등장한 1번 토토로가 꺼어엉충 뛰던 장면에서, 메이네 자매가 발이 여러 개 달린 고양이 버스를 타고 들판을 누비던 장면에서 반 아이들은 연방 귀엽다고 감탄사를 터뜨리며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80년대 금서의 기쁨도 이런 것이었을까? 90년대에 온 금기의 아니메는 우리에게 문화 선구자의 기쁨 또한 안겨줬다.

그 뒤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서울 명동 시내로 땡땡이 나간 친구들이 헐레벌떡 교실로 돌아왔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토토로 인형. 문화관광부의 허가도 없이, 라이선스 지불도 생략한 채 명동 한복판에 수북이 쌓여 있던 복제 ‘야매’ 인형들.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랴. 이름도 어려운 검댕 먼지 ‘맛쿠로쿠로스케’도 함께였다.

우린 당장 신청자 목록을 작성했다. 며칠 뒤 대표자들은 수십 마리의 토토로를 구매해 보따리장수처럼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지금껏 옷장 손잡이에 매달린 채 먼지를 먹고 있는 작은 토토로 인형은 한 시절 예수도 질투할 만큼 여고생들의 숭배를 한몸에 누리던 대단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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