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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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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동 엄마, 내 언니들의 단식

등록 2006-04-06 00:00 수정 2020-05-03 04:24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촉구 위한 단식농성에 1박2일 살다 … 약한 우리들이 더불어 사는 이 터전, 교문을 닫아서야 되나

▣ 최영선 11기 독자편집위원 soonduboo@hanmail.net

‘단식’은 소통의 방법이자 살빼기 방법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단식으로 7kg을 감량한 나는 부끄럽게도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소통의 단식을 경험해보진 못했다. 지율 스님의 앙상한 모습이 단식의 또 다른 의미를 말해주지만 먹는 즐거움이 아쉬운 소시민에게 단식은 남의 일 같다. 봄소식이 늦은 추운 3월, 장애아를 둔 전국의 엄마 아빠들이 곡기를 끊고 생명을 담보로 서울 한복판에 모여 단식을 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장애 아동의 엄마인 나도 그들 옆에서 1박2일간 단식을 하게 됐다. 절실하게 소통하고 싶은 것이 생겼기에.

이 죽일 놈의 언론, 내가 쓴다 내가 써

장애아 부모들이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라는 이름 아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1층에 모여 단식을 시작한 건 3월13일이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내가 몸담은 서울 강동구 소재의 ‘위례시민연대’와 인연 있는 강동지역 장애 아동 부모들도 참가하게 됐는데, 그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게 우리 단체의 역할이다. 서울 강동구는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서울통합학부모회 사이에 네트워크가 잘 구성돼 있다. ‘아줌마 연대’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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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첫날 지지 방문을 못해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뉴스를 찾아봤다. 그런데 웬일인가.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했다는데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 방송과 신문이 조용하다. 울산에서, 대전에서 직장과 가정을 팽개치고 모였는데 언론이 무관심하니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죽일 놈의 언론’. 섣부른 의협심에 <한겨레21> 독자편집위원 신분을 활용하기로 맘먹었는데, 독자가 세상에 뛰어들어야 한단다. “아, 저, 기사를 쓰겠다는 거지 굳이 단식을 하겠다는 건 아닌데요”라는 말을 남기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단식에 참가하게 됐다.

3월21일 화요일 아침 농성장으로 향했다. 동행인은 박문희씨. 단식의 취지엔 동감하지만 엄마의 부재가 불만스러운 가족을 달래느라 아침 일찍 미역국을 끓여놓고 나온 참이다. 2004년 겨울 시민운동 8년차를 맞아 몸과 마음이 지쳤던 내게 문희 언니와 여러 언니들이 샛별 같이 나타났다. 옆구리에 정신지체 자녀를 한 명씩 낀 그들을 만난 건 서울시교육청 점거 및 삭발 투쟁을 한 얼마 뒤였다. 모자를 쓴 전업주부들이 스산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는 듯했다. ‘지치긴 뭘 지쳐, 이제 시작이야.’ 내 고통이 ‘껌’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날부터 ‘형님’으로 접수했다.

이미 단식농성장엔 20여 명이 모여 있다. 장기 단식 중인 이, 일일 단식에 참여하는 이, 회복 때 먹으라며 멀리서 호박을 공수해온 손님 등 여러 사람들로 북적인다. 장기 단식은 일반인에게 어렵기 때문에 준비본부는 며칠씩 릴레이로 참여하도록 권유하면서 자발적인 단식 접수를 받았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에 이름이 올려지지 않은 지역단체들도 동네 언니들을 걱정하며 줄기차게 찾아온다. 어떤 이는 장애아를 둔 부모가 아닌데 단식에 뛰어들었다가 나흘 만에 응급실에 실려갔다.

아, 장애아들에겐 너무나 무서운 학교!

나도 돗자리 위에 자리를 잡아본다. 귀퉁이 침낭을 베개 삼아 비스듬히 누워본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회 통합을 고민하고 차별에 분노하다가도 아이들의 엉뚱함을 얘기하며 웃는다. 입학 거부와 전학 강요, 시설 미비 등의 교육 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아들의 일상과 엄마들의 마음을 옆에서 헤아려본다. 이런 식이다.

사회 통합은커녕 가정 통합도 버겁다. 비장애아인 아이에겐 “혼자서 할 수 있지?”라고 말하고 미안해한다. 그러곤 엄마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딴 세상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이가 부러져서 올까봐, 경기 일으켰다고 연락이 올까봐 걱정된다. 야외학습 사고는 부모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각서를 요구한 학교가 야속하다. “지난해 이런 애 때문에 고생했는데 올해도 왔네요”라고 불만스럽게 말하는 교사의 얼굴도 어른거린다. 초·중학교는 통합교육이 의무화됐지만 영·유아와 고등학생은 교육기관이 거부하면 교문에 못 들어간다. 초·중학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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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급을 설치한 중학교는 30% 이하라 집 근처 배정이 어렵다. 고등학교? 시·군·구에 하나 이상 특수학급 설치 학교가 있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하루 종일 암흑 상자 속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쥐죽은 듯이 있다 와야 한다. 넓은 교정에 무장애 공간은 없고, 특수교육 보조원도 부족하다. ‘왕따’도 무섭다. 울산의 어느 중학생 장애 아동은 6개월간 여섯 번 갈비뼈가 나갔지만 학교 당국도 교사도 아이들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비장애아들이 장애아를 세워놓고 괴성을 지르지 않으면 손가락 뼈를 부러뜨리겠다고 말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게 만들어버리는 일도 있다.

서울 강동구엔 지난해까지 고등학교 특수학급이 없었다. 아줌마 활동가들이 서울시교육청을 들들 볶아 겨우 한 학급 개설했지만 역부족이다. 그 학교에 아이를 보낸 김화숙씨 얘기다. “우리 아이는 백혈병 항암제 후유증으로 지능이 떨어진다. 특수학급 수업은 너무 쉽고 일반학급 수업은 너무 어렵다. 맞춤형 교육을 받고 싶지만 안 된다. 특정 교과 시간에 특수학급으로 가서 지도받는 게 아니라 무작정 오후시간대에 불러모아 수업하는데 교사 1명, 보조교사 1명이 13명의 학생을 책임진다.” 지능지수(IQ)가 69인 그의 자녀는 특수학급에서 엘리트다. 수준별 학습을 받고 기술을 익혀 취업하긴 하늘의 별따기다.

울산에서 올라온 김옥진(울산장애인부모회 대표)씨가 말한다. “성 문제를 놓치고 있다. 한 아이가 생리하는 날 무방비 상태로 학교 복도를 서성이는 걸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생리대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성적 욕구가 있을 때 장소를 불문하고 바지를 내리는 아이들의 행동을 외면해선 안 된다.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바지를 벗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 진도를 못 따라가고 성관념이 부족한 아이들이 어디 장애아뿐이랴. 비장애 학생의 은폐된 고통이 장애 아동의 참혹한 현실에 투사된다. 장애 아동의 교육은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종합선물 세트다.

오후 2시20분. 서울시청 앞으로 가자고 한다. 활동보조인제도를 요구하는 중증장애인들의 노숙투쟁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반나절 굶었을 뿐인데 배고프고 기운이 떨어진다. 하지만 아흐레 넘게 굶으신 분들이 옆에 계시니 그냥 쫓아간다. 아픔과 고픔을 참는 이 엄마 아빠들의 꿈은 소박하다. 아이가 남보다 뛰어나거나 큰돈을 벌길 바라는 대신 그저 전철표를 구입해 타는 법, 남이 있는 장소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학교에서 배우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부모가 죽은 뒤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으면 된다. 통합교육은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을 단순히 섞는 교육이 아니라 장애아가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말한다. 지금은 그저 학교 교문이 열리기만 바라며 곡기를 끊는다.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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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는 자들이 이 계절을 화려하게 사는 동안 힘없는 자들은 모든 계절의 추억을 안고 죽은 듯이 살아간다”는 정현종의 ‘힘’ 시구가 가슴에 박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혜경 민주노동당 전 대표와 심재옥 서울시의원이 다녀갔다. 아직 힘이 못미치지만 장애인권확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해는 지고 밤이 지나 아침이 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단식농성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리모콘의 교훈

3월26일 일요일 아침, 동네 길을 걷다가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영희 언니(장애여성 공감 대표)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리는 장애인 대회에 가는 길이란다.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려 동행했다. 단식농성 체험 덕분인가. 장애인 인권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23일 전국장애인교육권 연대는 교육차별 사례 181건을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서를 냈다. 30일에는 800여 명이 모여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장애인 교육 지원법 제정을 촉구했다.

서울시내 지하철 역의 엘리베이터는 리프트 추락사라는 아픔과 두들겨맞으면서도 이동권을 요구했던 장애인들의 노력이 만든 것이다. 혜택은 노인과 임산부 등 몸 불편한 이들에게 고루 돌아간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발명된 리모컨은 비장애인의 필수품이 됐다. 장애인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약한 존재인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며 행복해지자는,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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