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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독일에도 약장수가 있더라

등록 2006-02-10 00:00 수정 2020-05-03 04:24

서른에 독립을 했다. 물론 부모님 돈으로 얻은 집이긴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나 홀로 살기까지는 서른 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피스텔을 얻어 이사를 한 첫날밤, 시원찮은 난방 때문에 간신히 얼어죽기를 면했다. 생각보다 외풍이 심했던 것이다. 고된 이사에 체력장 삼세 판 뛴 것같이 온몸이 쑤시는데 춥기까지 하니, 이것 참 난감한 시추에이션.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시골집에 있는 온풍기였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집에 있었으나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고’는 몰랐던 그것. 원적외선이 나오는 램프까지 달려 있어 다래끼나 귀에 생긴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쓰이기도 했다. 온풍기를 들여놓고 가만히 살펴보니, 이것 참 오래되고 낡았더라. 물어보니 우리 가족이 독일에서 살았을 때 산 물건이란다.

1970년대 초 한국의 간호사, 광부들이 독일의 산업역군으로 수출되던 시절, 엄마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아빠는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와 동생이 태어났다. 가족을 먹여살리느라 밤 근무까지 해야 했던 엄마는 갓난쟁이인 나를 돌볼 수 없었고 외할머니에게 SOS를 쳤다. 처음으로 밟는 이국땅, 그것도 지구 반바퀴를 돈 유럽에 도착한 외할머니를 모시고 어머니가 처음 한 일은 단체관광이었단다. 온풍기는 그 단체관광의 결과물이었다. 단체관광을 가면 으레 만나기 마련인 약장수(?)들은 그 먼 곳에도 있었던 것이다. 순박한 모녀가 관광버스에 나란히 앉아 장사치의 꼬드김에 꾀여 카탈로그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안 봐도 비디오다. 이제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그때의 할머니 연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의 어머니처럼 손녀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세상에 둘뿐이었던 모녀의 여행길에서 남은 온풍기는 그들의 핏줄이자 벌써 서른이 된 노처녀의 겨울밤을 따뜻하게 덥히고 있다.

김지연/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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