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독립을 했다. 물론 부모님 돈으로 얻은 집이긴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나 홀로 살기까지는 서른 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피스텔을 얻어 이사를 한 첫날밤, 시원찮은 난방 때문에 간신히 얼어죽기를 면했다. 생각보다 외풍이 심했던 것이다. 고된 이사에 체력장 삼세 판 뛴 것같이 온몸이 쑤시는데 춥기까지 하니, 이것 참 난감한 시추에이션.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시골집에 있는 온풍기였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집에 있었으나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고’는 몰랐던 그것. 원적외선이 나오는 램프까지 달려 있어 다래끼나 귀에 생긴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쓰이기도 했다. 온풍기를 들여놓고 가만히 살펴보니, 이것 참 오래되고 낡았더라. 물어보니 우리 가족이 독일에서 살았을 때 산 물건이란다.
1970년대 초 한국의 간호사, 광부들이 독일의 산업역군으로 수출되던 시절, 엄마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아빠는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와 동생이 태어났다. 가족을 먹여살리느라 밤 근무까지 해야 했던 엄마는 갓난쟁이인 나를 돌볼 수 없었고 외할머니에게 SOS를 쳤다. 처음으로 밟는 이국땅, 그것도 지구 반바퀴를 돈 유럽에 도착한 외할머니를 모시고 어머니가 처음 한 일은 단체관광이었단다. 온풍기는 그 단체관광의 결과물이었다. 단체관광을 가면 으레 만나기 마련인 약장수(?)들은 그 먼 곳에도 있었던 것이다. 순박한 모녀가 관광버스에 나란히 앉아 장사치의 꼬드김에 꾀여 카탈로그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안 봐도 비디오다. 이제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그때의 할머니 연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의 어머니처럼 손녀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세상에 둘뿐이었던 모녀의 여행길에서 남은 온풍기는 그들의 핏줄이자 벌써 서른이 된 노처녀의 겨울밤을 따뜻하게 덥히고 있다.
김지연/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란 “일본과 협의 거쳐 호르무즈 선박 통행 허용 용의”

장동혁 “경선 하도록 해달라”…이정현 ‘중진 공천 배제’ 제동

트럼프 “이란 작전 축소 검토”…“호르무즈는 이용국이 경비해야”

이 대통령, ‘그알’에 “사과하라” 직격 이유…8년째 괴롭힌 ‘조폭 연루설’ 출발점

1회당 평균 이용객 ‘0.98명’…이게 수도권 전철역이라고?

김상욱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 확정

국힘 전 대변인 “이 대통령 조폭연루설 논평 사과…‘그알’도 바로잡길”
![[단독] BTS 공연에 광화문광장 일주일 쓰고 3000만원 낸다 [단독] BTS 공연에 광화문광장 일주일 쓰고 3000만원 낸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320/53_17739970232338_20260320502380.jpg)
[단독] BTS 공연에 광화문광장 일주일 쓰고 3000만원 낸다

한겨레가 ‘천궁-Ⅱ 대박’ 기사 안 쓴 이유

대전 공장 화재 사망 11명으로 늘어…실종 3명 수색작업 계속



![[단독] 급식실 ‘1억짜리 조리 로봇’ 수발드는 노동자들… “업무 더 늘어” [단독] 급식실 ‘1억짜리 조리 로봇’ 수발드는 노동자들… “업무 더 늘어”](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319/53_17738796643712_2026031950049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