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겨울 가족과 함께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혹시 추워질 수도 있으니까’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챙겨넣었던 빨간색 벙어리장갑은 6일 내내 요긴한 방한 물품이 됐다. 차와 케이블카를 이용해 태산에 등반하려 했으나 바람에 얼굴이 얼얼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 케이블카의 선이 얼어버려 등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않게 추웠던 중국 여행 내내 빨간 장갑은 늘 내 손에 끼워져 있었다. 그런데, 여행 나흘째 되던 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차에 올랐는데 이럴 수가! 내 빨간 장갑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내 얼굴에 당혹스런 빛이 나타났다. ‘이 장갑이 어떤 장갑인데!’
내가 대학을 졸업했던 1984년 2월. 나는 고향으로 내려와 교직 발령을 기다려야 했고 친구 현자는 자신의 고향인 홍성으로 내려가 모교에서 교편을 잡기로 되어 있었다. 4년 동안 붙어다녔던 친구들도 다들 각자의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할 터였다. 우리는 이제 자주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조금씩 다가가고 똘똘 뭉쳐다니던 시절이 끝나가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우리의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절이 지나가버린 것이 가슴 아팠다.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그때, 현자가 포장지에 싸서 건네준 것이 바로 이 빨간 벙어리장갑이었다. 현자가 직접 짠.
내 딸 우정이는 나의 허탈한 표정을 보더니 장갑을 꼭 찾아오겠다며 그 식당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서 한 손에 장갑을 쥔 채 버스로 올라왔다.
얼마 전 현자가 가족과 함께 연락도 없이 갑자기 광주에 왔다. 많이 커버린 아이들. 소탈하고 정 많은 남편.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눈 뒤, 하룻밤 자고 가라는 만류에도 현자는 훌쩍 떠나버렸다. 가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중국 다녀온 이후, 언젠가 현자를 만나면 장갑 낀 손을 내밀어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던 내 계획이 그저 반갑고 즐거운 마음에 망각으로 흘러가버렸다는 것을.
김광숙/ 광주시 남구 봉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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