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내 나이 꼭 열아홉에 현장실습이라는 걸 나갔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공부까지 하기 싫었던 나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녔고, 당시 공고는 3학년 2학기 때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대부분의 학생이 일을 시작했다. 대학 간다고 신나하던 동네 친구들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워낙 가난하게 자란 탓인지 난 그저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용돈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19살에게 세상이란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어서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선배들에게 온갖 잔소리와 욕을 들어가며 일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몇 달 지나지 않아 손에 쥐어지는 월급봉투도 반갑고, 일도 손에 조금씩 익어갈 무렵 갑자기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식당에 다니시던 어머니는 아버지 병 수발을 들어야 했고, 손위 형은 군대에 있었으며, 집에는 편찮으신 할머니가 계시고, 막내동생은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난 이제 겨우 스물이 되려고 하는데 이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할머니를 보살피고, 아침엔 동생 도시락을 쌌고, 부족한 병원비를 위해 낯모르는 친척집에 가야만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내 월급이 우리 집 생활비의 전부였다. 그렇게 한 2년을 지내다가 군대에 다녀왔다. 군대가 더 편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내 10대와 20대는 참으로 혹독했다.
어느덧 15년이 지나 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에 집정리를 하다가 이 펜치를 발견했다. 내가 처음 일을 할 때 손에 쥐어져 있던 그 펜치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덕분에 슬쩍 잊고 있던 내 어린 날을 기억해냈다. 오랜 친구처럼, 낡고 녹슬었지만 내 힘든 나날을 같이 버텨주었던 이 펜치를 다시 곱게 닦아놓아야겠다. 가끔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버텨냈고 잊혀져버린 내 어린 시절을 이 펜치와 함께 돌아봐야겠다.
박현성 광주시 북구 오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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