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정리를 하다 예전에 대입 수능시험을 칠 때, 언니가 일정표로 쓰라고 만들어준 수첩을 우연히 발견했다. 총 50장으로 돼 있는 이 수첩은 각 장에 ‘D-50, D-49… D-1, D-day’라고 쓰여 있어 매일 한 장에 그날의 공부 계획을 적어놓을 수 있게 돼 있다.
첫 장을 넘겨보니 당시 나의 목표였던 ‘00대 심리학과’가 붉은색의 결연한 필체로 쓰여 있다. 그래, 그 당시에는 심리학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다고. 초반에는 이것저것 많이 적혀 있다. 자습시간에 모의고사 풀기, 언어영역 고전문학 부분 복습하기…. 그러나 한장 한장 넘어갈수록 예쁜 글씨체는 점점 날리기 시작하고 수첩의 하얀 빈 공간도 늘어난다. D-37일째는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오늘은 공부가 안 된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라는 섬뜩한 글귀가 적혀 있고, D-25일부터 D-20일까지는 도대체 이 기간엔 뭘 했는지 아무것도 기록이 안 돼 있다.
오랜만에 이 수첩을 보니 당시 끔찍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수능 50일 전쟁! 그건 정말 전쟁이었다. 거부할 줄도 모르고 그냥 당연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만 생각했던 소용돌이.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전쟁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극성스럽다. 문제 답 하나의 시비를 가리기 위해 온 수험생이 들썩거린다거나 사상 초유의 휴대전화 부정사건으로 우리 사회를 경악에 빠뜨리는 것도 모자라 올해는 MP3 소지 여부로 헌법소원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수능’이라는 행사가 시한폭탄이 돼버린 것 같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예전에 수능과 전투를 치르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든 각자의 기억이 모였을 땐? 그 ‘전쟁의 추억’은 정말 끔찍하다.
이언정/ 경남 창원시 용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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