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이 맞지 않아도, 흰색 페인트가 울퉁불퉁 칠해져 있어도 저 책장은 나에게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물건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책장이다.
왜냐면 그건 산 것이 아니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 뭐든지 잘 버리지 않으시고 남이 버린 것도 다시 가져와 쓰시는 아버지께서, 공사장에서 쓰고 버린 목재를 주워다 만들어주신 것이다. 중학교에 올라간 막내딸을 위해 대패질로 매끄럽게 다듬고 못질을 해서 마지막엔 흰색 페인트를 발라 나름대로 멋을 낸 책장. 원래는 초등학교에서 버린 것을 개조한 흰색 책걸상과 쌍을 이루었던 것이다. 내가 커진 만큼 작아진 책걸상은 더 이상 쓸 수 없어 지금은 없어졌다.
처음으로 내 책장을 가진 나는 그걸 며칠이 걸려 만든 아버지의 노고는 생각도 못한 채 그저 좋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선물이 아니었을까. 거기엔 차곡차곡 내 영혼의 흔적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읽었던 <갈매기의 꿈>과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 고등학교 때 읽었던 <태백산맥>과 수십권의 시집들, 대학 때 읽던 여러 종류의 사회과학 서적과 소설들이 꽂히고 사라져갔다. 그렇게 내 십대의 질풍노도와 꿈과 좌절이 녹아 있는 나의 책장.
그러나 내 책장이 더 소중한 건, 거기에 아버지의 허영이 없는 정직한 삶의 태도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더해질 때마다, 한두번의 좌절이 더해질 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더 많이 화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저 책장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느낄 때가 많아진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건, 편하게 산 적이 없었던 내 아버지의 삶과 나의 지난날들 때문임을 안다.
권설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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