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보건원 김정림씨의 모기연구에 바친 한평생… “북한 모기도 연구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김정림(60)씨를 ‘모기박사’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모기의 생태연구는 그의 채집과 분류에 의존해 왔다. 그의 공식직함은 국립보건원 의동물과 보건연구관. 정확한 임무는 모기를 비롯해 들쥐, 진드기, 바퀴벌레, 벼룩, 파리 등 사람들에게 유해한 ‘위생동물’들의 습성을 연구하고 방제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7월14일 오전 10시 국립보건원 3층 의동물과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망사를 씌운 컵에 죽은 모기들이 잔뜩 들어 있다. 한쪽에서는 연구생 몇명이 핀셋으로 모기들을 일일이 집어 분류하고 있다. 현미경으로 모기를 관찰하는 초로의 남자가 보였다. 모기박사 김정림씨다.
모기박사로 불리지만 사실 그는 박사학위는 없다. 늦깎이 학생으로 94년에 석사학위를 땄을 뿐이다. 그런데도 쟁쟁한 박사들이 모여 있는 국립보건원에서 유독 그가 모기박사로 꼽히는 이유는 무얼까. 그의 25년에 걸친 현장경험을 따를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환갑이 된 지금도 젊은 연구관들과 짝지어 일주일에 한번씩은 출장을 다닌다.
채집하다 간첩으로 몰리기도
동물 연구의 기본은 채집이다. 일단 산 채로 잡아야 생태를 알 수 있고, 생태를 알아야 방제대책을 세울 수 있다. “지금은 교통편과 채집기구가 좋아졌지만, 과거에는 겉으로만 폼나는 연구직 공무원이지 실상은 그만한 막노동이 없었어요. 생포한 것들을 넣을 용기랑 채집기구들을 담은 부대를 질질 끌면서 시외버스 타고 다녀야 했죠.”
그가 모기연구를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이다. 경기도 양평에 말라리아 방제를 위해 내려온 한 공무원의 눈에 띈 것이 계기다. 일손이 달린 공무원들이 실무보조자를 급히 구했는데, 근처에 고등학교까지 나온 사람이 없어 그가 발탁됐다. 당시 그는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농사일을 거들던 중이었다. 어쨌거나 그 인연으로 그는 현 국립보건원의 전신인 국립보건연구원의 뇌염센터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의동물과 전신인 매개곤충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규직이 됐다. 81년 대학에 입학해 동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석사학위까지 마친 것은 쉰네살인 지난 94년이다. 말단 임시직 시절까지 합하면 꼬박 28년간 모기 잡는 데 청춘을 바친 셈이다. 애당초 웅대한 포부나 날선 각오는 없었다고 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성실한 공무원으로 일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공부도 그래서 했다.

모기 채집을 할 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유문등을 걸어 놓고 거기에 몰려드는 모기를 잡는 방법과 기다란 고무호스가 달린 흡충관을 통해 빨아들이는 방법이다. 앞의 경우는 힘 안 들이고 한꺼번에 많이 잡을 수는 있지만 모기들이 상한다. 뒷방법은 상하지 않게 ‘생포’할 수는 있지만 한 마리씩 일일이 입으로 빨아들여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생포한 모기를 옮겨 담는 원리는 간단하다. 코팅하지 않은 특수제작된 컵에다 망사를 씌우고 그 위에 설탕물 적신 솜을 얹어 놓는다. 그런 뒤 망사를 살짝 들춰 흡충관에 걸려 있는 놈을 재빨리 불어 담는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정교한 솜씨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대규모 축산 농가가 많지 않았다. 농가 우사에 한두 마리씩 있는 소에 달려드는 모기를 잡곤 했는데, 오줌벼락이나 똥벼락을 맞는 건 다반사였고 심지어 성난 소의 뒷발질에 채일 뻔한 일도 있었다. 소들이 ‘협조’를 안 해 줄 때는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앉아 몸에 달려드는 모기를 흡충관으로 빨아 올려 잡기도 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슬퍼런 유신 시절 간첩으로 몰린 일도 있다. 전북 정읍지역에서 모기를 채집한 뒤 여관방에 돌아와 그날 잡은 모기 숫자를 세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쳤다. 셈하는 기계를 톡톡 두드리는 소리를 누군가 듣고는 북한과 무전통신하는 것으로 오해해 신고한 것이다.
내성 기른 ‘수퍼 모기’를 조심하라
그처럼 숙달된 연구관이라면 저녁 8시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4∼5시간 사이에 대략 모기 200여 마리를 잡는다. 그러면 통상 50%, 100번 가까이는 물린다고 한다.
모기 잡아 연구하는 데 열중했던 모기박사는 정작 제 몸 돌볼 줄은 몰랐던 듯하다. 올 4월 잠복했던 말라리아가 발병해 된통 앓고 말았다. 지난해 여름 말라리아원충을 옮기는 중국얼룩무늬모기를 잡으러 다니다 잘못 물렸던 것이다. 한 사흘 비실비실거리며 출근했고, 한 사흘 정신없이 앓았다고 한다.
“말라리아는 잠복기가 길면 2년 가까이 됩니다. 이유없이 오한이 나고 신열이 오르고 두통이 심해지면 감기몸살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혈액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어요. 저도 처음엔 몸살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치료만 하고 완쾌될 수 있었지만, 간에 감염된 경우에는 치료만으로는 안 됩니다. 원충 자체를 죽여야 하니까 적어도 18일 이상은 약물복용을 하면서 안정을 취해야 해요.”
그의 책상에는 큼지막하게 찍은 모기 사진이 두 개 걸려 있다. 하나는 학질매개모기라고 불리는 중국얼룩날개모기로, 말라리아원충을 퍼뜨리는 놈이다. 다른 것은 일본뇌염매개모기로 불리는 작은빨간집모기다. 중국얼룩날개모기는 날개에 얼룩덜룩한 점이 있고, 일본뇌염모기는 주둥이에 흰 띠가 둘러져 있다. 벽에 기댈 때도 중국얼룩날개모기는 비스듬히 기대고 일본뇌염모기는 나란히 기댄다. 지금까지 경기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얼룩날개모기가 활개쳤다면 7월 중순 이후로는 경상남북도나 전라남북도의 경우 일본뇌염모기를 조심해야 한다.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면 사람이 모기를 피하는 수밖에 없다. 가급적 밤 시간에 외출을 삼가고, 집에는 모기장이나 방충망을 설치해 놓는 게 좋다. 몸에 바르는 기피제나 뿌리는 모기약은 잔류성이 길지 않고, 자칫 하다간 모기들의 내성이나 저항성만 기르게 할 우려도 있다. “원래 모기들은 벽에 한참을 붙어 있다가 사람이나 동물을 공격하고는 다시 벽에서 쉬다가 밖으로 나가는 습성이 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모기들이 벽에서 쉬지 않는 겁니다. 벽에 약물이 발라져 있거나 쉬다간 쉽게 잡힌다는 사실을 터득해 저항성을 길렀기 때문이죠.”
모기에 물린 부위가 가려운 정도나 부풀어 오르는 모양만 갖고는 독성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다. 사람 체질과 모기의 ‘허기증’ 상태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 체취가 천차만별이듯 모기의 기호도 천차만별. 실제로 산란기 암놈 모기라면 인정사정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덤벼듭니다. 두꺼운 청바지도 뚫을 정도인데요. 아무리 손사래짓을 해도 아랑곳없어요. 알을 낳으려면 단백질이 필요하고, 그걸 채우려면 동물의 피밖에 없으니까요.”
과거 우리나라는 방제를 위해 화학살충제를 썼지만, 환경의식이 높아진 요즘은 천적양성에 더 공을 들인다. 미꾸라지가 모기유충을 잡아먹는다는 것과 송사리, 왜몰개(피라미의 일종), 딱정벌레 등도 맞춤한 천적이라는 것은 현장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들이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배웠죠”
“과거에 비해 살충제나 농약사용이 늘면서 모기의 절대 숫자는 줄었습니다. 하지만 병독성은 더 커졌죠. 사람이 제 한몸 편하자고 자연에 너무 오만을 부렸기 때문인지 몰라요.”

그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국립보건원을 정년퇴임한다. 이렇다할 학벌없이 시작한 연구생활, 성실함과 체력만으로 버텼던 채집생활, 지나고 보면 힘들었지만 한우물을 판 보람도 만만찮다. 여느 시골소년들과는 달리 개구리도 못 만지고 벌레 하나 맘놓고 죽이지 못했던 그가 오랜 세월 모기와의 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비결은 맡겨진 일에 대한 책임감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국가 방제시스템에 한몫 했다는 자부심 못지 않게 그가 보람을 느끼는 것은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공존의 지혜를 배웠다는 점이다. 단 하나 크게 아쉬운 일이 있기는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3천∼4천명 선이지만, 방제·위생시설이 열악한 북한에서는 한해 10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린다고 해요. 안타깝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조사하고 싶어요. 남북교류 빗장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연구교류는 아직 더디기만 하네요. 퇴직 날짜는 다가오는데…, 참 아쉽습니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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