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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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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우리모두 ‘귀족 노조’가 되자

등록 2005-08-05 00:00 수정 2020-05-03 04:24

아시아나 파업 사태, 대중은 ‘억대 연봉’ 대신 파업의 정당성 따져야
조종사 끌어내려 노동 운동 흔들 것인가, 우리 모두 ‘중산층’이 될 것인가

▣ 김상호/ 독자

내 지인 중 하나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운동을 무력화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은 그들의 연봉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물론 이 말을 한 내 지인은 좌파와 별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것은 우리나라의 노동쟁의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몇년 전에 발생한 지하철 파업을 생각해보자. 지하철 노조의 주장에는 임금 인상이 없었지만 여론에서 지하철 노조의 임금 수준이 알려지자마자 쟁의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신자유주의의 사악한 게임

요즘 문제가 되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을 보자. 사람들은 조종사 파업을 비난하면서 조종사의 억대 연봉을 언급한다. 사람들은 조종사들을 귀족 노조라 비난하고, 조종사를 모두 해고한 뒤 외국인 조종사를 채용할 것을 강경하게 요구한다. 이것은 냉혹한 신자유주의의 논리다.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서민 대중이 이러한 주장을 더욱 열성적으로 옹호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서민 대중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나는 이 지점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아래서 현존하는 적은 관료화된 귀족 노동자들이다. 귀족 노동자들은 결국 중산층을 의미한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중산층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자본주의만이 건전한 중산층을 양산한다고 말하면서 다만 그러한 중산층이 ‘귀족화’되는 것을 비난한다. 신자유주의는 중산층을 비난하며 서민층과 중산층을 이간질한다. 물론 서민들은 여기에 호응하며 자본으로 하여금 중산층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것을 요구하는데, 서민계층은 이러한 해고의 자유만이 관료화된 중산층 노동자가 야기한 노동의 경직성을 완화해 종국적으로 자기 자신이 취업되어 중산층으로 편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주장하는 바와 같이 중산층이 되면 그 순간 그는 귀족 노동자로 간주되어 해고의 위협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폭력적인 게임의 승리자는 자본가가 아니다. 좌파들이 애써 무시하는 사실 중 하나는 현대 사회는 좌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더 급진적으로 말하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아래의 현대 사회에서 좌파들이 자본가의 착취를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은 논점을 잘못 짚은 것이다. 지금 노동자들이 가장 분노하는 대상은 자본가 계급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노동자다. 단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논리가 종국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민 계층이 중산층에게 적대감을 갖고 중산층을 몰락시키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것은 비인격적인 자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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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노동자의 노동자에 대한 비난이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사악한 메커니즘의 일부라는 점이다. 물론 노동자는 반드시 옳다는 이상한 좌파적인 개념은 시대착오적이다. 노동자도 다른 노동자를 착취하기도 하고, 부도덕하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운동과 노조를 비판할 때는 그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지가 우선적으로 판단 기준이 되어야지 그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어떠한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서는 안 된다.

인터넷에서 자주 발견되는 주장인 예전의 노동운동의 주체는 힘없는 전태일이었지만 지금의 노동운동의 주체는 귀족들이라는 주장은 ‘힘없고 약한 노동자’만 노동운동을 할 자격이 있다는 관념을 내포한다. 하지만 과연 어떤 사람이 힘없고 약한 노동자인가?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의 노동자라면 노동 귀족으로 여긴다. 그러한 논리의 끝은 아무도 노동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는 자크 라캉의 유명한 주장,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의 선택’을 도입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나쁜 것이다. 그것은 아주 비효율적이고 부도덕하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없는 것은 더욱 나쁘다. 노동운동이 전혀 없다면 약탈적인 자본의 논리에 모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다.

귀족 노동자, ‘중산층’의 다른 이름

이제 아시아나항공 파업 사태로 돌아가자. 아시아나항공의 파업 사태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파업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다. 과연 조종사 노조의 요구가 그들이 주장하는 안전성의 담보와 합치하는가? 그들은 정말로 자신이 주장하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 파업했는가? 이것이 진짜 중요한 문제다. 조종사 노조의 주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많은 문제점이 보인다. 우리가 만일 조종사 노조를 비난한다면 비난의 지점은 여기가 돼야 한다. 그리고 좌파와 우파를 넘어 이러한 지점에 대해서는 매섭게 비판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돈을 얼마 받느냐는 문제에 집중해 귀족 노조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곧바로 신자유주의의 사악한 게임에 말려드는 것이다.

90년대 중반까지 귀족 노동자라는 개념은 널리 사용되지 않다가 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널리 쓰이게 됐다. 귀족 노동자라는 개념의 등장은 중산층의 몰락과 궤를 같이한다. 귀족 노동자는 중산층의 다른 이름이다. 90년대 초까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매우 적다. 귀족 노동자에 대한 비난은 자신이 상실한 중산층의 지위에 대한 향수의 표현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노동 귀족을 비난하면서 끌어내리고 종국적으로 모두 빈곤층이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노동 귀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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