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내가 시골에서 어렵게 공부할 때였다. 농고를 다닌 나는 졸업 뒤에 영농을 해보겠다며 예비고사도 치르지 않았다.
70년대는 전국이 새마을 운동으로 법석을 떨 때다. 새벽마다 농촌에서는 ‘새벽종이 울렸네…’ ‘잘 살아보세…’ ‘백두산에 높은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등 계몽성 노래가 동네 마이크를 타고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나도 삽과 괭이를 지게에 지고, 마을길과 농삿길 넓히는 현장을 쫓아다니며 열심히 일했다.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도 해나갔다. 그러나 그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가라. 농사일 시키려고 공부 가르친 거 아닌께.”
다시 책을 잡았다. 소박한 영농의 꿈은 접었다. 방송통신대학이란 곳이 있다는 것을 어렵사리 듣게 되었고 나는 농학과에 입학했다. 혼자 공부하다시피 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사전이 늘 필요했다. 그때 구입한 것이 지금 내게 다시 돌아온 국어와 영한사전이다. 국어사전은 ‘78. 3. 2. 공주 세종사’, 영한사전은 ‘76. 7. 8. 공주 세종사’로 겉표지 안쪽에 파란 잉크로 구입 날짜와 책방 이름이 쓰여 있다. 그 뒤 같은 대학 초등교육과에 다시 입학해 공부할 때까지 나와 10여년을 함께했다.
세월은 흘러 자식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이 사전을 물려받아 몇년 쓰더니 전자사전이 편리하다며 멀리했다. 그 뒤 책꽂이에 처박혀 거들떠보지도 않던 두권의 사전을 나는 몇년 전에 다시 내게로 데려왔다. 27년, 29년 된 사전들이다. 지금은 교실의 내 책꽂이에 꽂아놓고 아름아름한 것들이 나오면 얼른 사전을 집어들고 찾아본다. 겉표지가 닳고 찢어졌어도 나에게는 보배다. 교실을 떠날 때까지 함께하련다.
남궁명/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남은 꽃 떨어져” 이토 히로부미 친필 한국서 발견…친일파가 보관

정부 “이스라엘에 유감…이 대통령 인권 신념 잘못 이해해”

한동훈, 조국 하남 출마설에 “부산 피하더니 거기가 험지냐?”

종전 협상, 파키스탄 통해 의제 조율…이란 ‘4가지 레드라인’ 제시

최대 60만원 ‘고유가 지원금’ 27일 지급 시작…8월까지 사용해야

미-이란, 종전 협상 시작…개전 43일 만

미국인 교황, 트럼프 궤변 겨냥…“하느님은 전쟁 축복하지 않아”

박형준, 주진우 꺾고 국힘 부산시장 후보…전재수와 대결

“10시 이후에 출근”…정부, 노인일자리 ‘출·퇴근 시간’ 조정한다

업무시간 술마시고 노래방…대법, 오창훈 부장판사 사직서 수리

![[단독] 에어건 ‘장기 손상’ 피해자 “사장, 내가 괴로워하자 만족한 듯 웃어” [단독] 에어건 ‘장기 손상’ 피해자 “사장, 내가 괴로워하자 만족한 듯 웃어”](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6/0410/2026041050121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