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 실과책에는 목공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국기함 만드는 법이 실려 있었다. ‘나무를 치수에 맞게 톱질하고 표면을 사포로 다듬은 다음 못을 박아 모양을 만들고 뚜껑에 국기 그림을 그린 뒤 니스칠을 하여 말리면 완성.’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문구점에 가면 ‘국기함 세트’를 살 수 있었다. 나무판은 교과서에 적힌 치수에 딱 맞추어 재단돼 있었고, 길이가 불과 2.5cm 정도인 앙증맞은 못도 들어 있었다. ‘판피린 에프’ 정도 크기의 병에 담긴 니스의 양도 딱 국기함에 칠할 만큼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작은 망치도 있었다.
아마 완성된 국기함을 제 용도로 쓴 적은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넣어두다가 1년도 못 되어 폐기처분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국기함 세트의 여러 부속물 중에 유일하게 장장 17년을 살아남은 물건이 있으니, 국기함 전용 망치가 그것이다.
‘또 언젠가 못질을 할 일이 있으려니’ 싶어서일까? 망치를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실제로 그 망치로 벽에 달력 같은 것을 걸려고 못을 박은 적도 서너번쯤은 있다(물론 그걸로 보통 못을 박는다는 건 어림도 없었지만). 하지만 망치가 진면목을 발휘한 때는 다름 아닌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망치의 사이즈가 호두알을 깨는 데 딱이었던 것이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무게, 동그랗고 평평한 머리…. 왼손으로 호두를 쥐고 고정시킨 다음 오른손으로 망치를 쥐고 호두의 정중앙을 가격한다. 중요한 건 ‘짧고 굵게’ 내리치는 거다. 너무 세게 쳐서 알맹이까지 박살을 내도 문제지만, 힘이 모자라면 호두가 저만치 튀어 애꿎은 손가락만 다치기 십상이다.
올 대보름날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갈수록 주변에서 달맞이 명절은 희미해지지만 나는 찰밥에 나물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부럼을 깨물어 먹는다. 비록 크기는 작으나 우리 집 웬만한 세간보다 오래된 호두까기 망치가 본때를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김은영/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내란대행’ 한덕수 석달 전 본심 인터뷰 “윤석열은 대인, 계엄령은 괴담”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새 해운대구청 터 팠더니 쏟아져 나온 이것…누구 소행인가?
한덕수, ‘200표 미만’ 탄핵안 가결땐 버틸 수도…국회, 권한쟁의 소송내야
한덕수의 궤변…대법·헌재 문제없다는데 “여야 합의 필요” 억지
헌재, 탄핵심판 일단 ‘6인 체제’ 출발…윤은 여전히 보이콧
국힘 김상욱·김예지·조경태·한지아, 헌법재판관 선출안 표결 참여
분노한 시민들 “헌법 재판관 임명 보류 한덕수 퇴진하라” 긴급 집회
‘오징어 게임2’ 시즌1과 비슷한 듯 다르다…관전 포인트는?
[단독] 문상호 “계엄요원 38명 명단 일방 통보받아 황당” 선발 관여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