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네, 녀석.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행색하고는…. 꼴이 허름하다. 세상의 빛을 주무르던 옛 시절의 화려함을 포기하고 구석에 웅크린 지 1년이 지났다.
녀석과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 동아리에 흠뻑 빠져 있던 대학 2학년 때, 아빠의 깜짝 선물이었다. 니콘801S. 녀석은 당시 70만원으로 제법 몸값이 나갔다. 순식간에 값비싼 물건을 소장하게 된 느낌은 기쁨보다는 얼떨떨함이었다.
처음으로 가져본 카메라. 애지중지하던 보물이라 어디든 함께하고 싶어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낮밤 할 것 없이 ‘한건’ 건져볼까 하며 도심을 누비던 날들, 산과 바다를 찾아 이리저리 구도를 잡아보던 시간들. 어설픔이 잦게 쌓이며 익숙함이 무르익었고 우린 그렇게 충만한 정을 나눴다. 같은 피사체를 바라보는 두 눈이 한순간에 하나 되기를 소원하며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고, 내가 품은 느낌, 순간의 감각은 그의 렌즈를 통해 보고 느낄 수 있는 이미지로 재현됐다. 내키지 않는 컷들도 무수하나, 그 안에 하나둘 보물이 있어 쉼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중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1년 전 겨울 어둠이 깔리던 이태원 거리. 뭣에 한눈을 팔았는지 카메라를 떨어뜨린 것이다. 산산조각난 카메라 앞에서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아.아.아. 한동안 속으로 수없이 소리를 질렀다. 사고 초기의 안타까움도 시간이 지나며 빛바랜 감정으로 돌아섰고 녀석은 온몸에 상처투성이 고물기계가 됐다. 필카가 종언을 고한 디카 시대. 그의 컴백은 불가능해 보인다.
“나로 찍어주세요” “세상을 찍고 싶어요” 중얼중얼 꿈틀꿈틀. 녀석을 다시 돌아보니 간절한 부르짖음이 흰 테이프 붕대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다음주엔 카메라 가게에 들러봐야겠다. 녀석이 제구실을 할 수 있는 렌즈가 있을까. 그의 눈을 찾아주고 싶다.
이현경/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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