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특집은 농산물 유통 구조의 문제점 속시원하게 파헤쳐줘
한비야의 파키스탄 리포트와 APEC 인터뷰엔 분석기사 없어 아쉬움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제대 뒤에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없는데 하나와 영인이, 파키스탄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이 절로 나와 놀랐다”는 한윤기 위원. 그의 말이 <한겨레21>의 11월을 되새김질한다. 지난달 독자편집위원 기사가 나간 뒤 소식이 뜸한 이들도 연락을 줘 놀랐다는 11기 위원들은 11월2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유아 유기 책임, 여성부 더 추궁을
김민정: 586호 ‘하나는 왜 맞아죽었나, 영인이는 왜 물려죽었나’는 유아 유기가 부모 책임만이 아닌 정부의 정책 부재가 큰 원인이라고 잘 지적했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노동 조건이 나빠지는 가운데 양육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영선: 584호 ‘이혼의 매너’와 뗄 수 없는 기사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아이를 작업장에 재우는 부모의 심정을 국가는 헤아려봤나. 기사에서 여성부 입장을 더 추궁해서 입장을 해명하도록 해야 했다.
김지혜: 표지 사진의 여자아이 그림자가 외로워 보였다. 충격적이고 불편하게 만드는 제목이 유기의 공포를 잘 표현했다. 그런데 24시간 보육시설 외에 다른 보완책은 없는지 계속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염인선: 교육문제도 간과해선 안 된다. 기본적인 성장 배경이 갖춰진 한부모 아이들도 사회의 편견으로 정신적 유기를 당한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 바로 아이들 놀이 문화인 ‘유희왕’에 대한 기사가 나와 기사 배치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한윤기: 그러나, 정성스럽게 눈높이를 맞춰 아이들 문화를 짚어본 점은 의미가 있다.
최영선: 그런데 여전히 한국에서 이혼이란 가정폭력, 가족유기 등 파렴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야 가능한 것 같다. 584호 ‘이혼의 매너’같은 이혼 관련 기사를 작성할 땐 이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 또한 가능한 한 긍정적인 사례를 발굴해달라. 쉽지 않은 건 알지만 부정적인 사례들은 ‘부부클리닉’ 등으로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김민정: 친권, 양육권, 재산분할 같은 현실적인 쟁점을 부각시킨 점이 돋보였다. 이혼숙려제도의 딜레마를 잘 짚어냈다.
김지혜: 그런데 표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지나치게 평범했다. 그린 이의 표기도 빠지고. 본문 기사의 대표 사진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소녀와 엄마, 아빠를 담은 사진이 쓸쓸함과 불안감을 자아냈다.
권일지: 상쾌한 고발이다. 기혼자가 이혼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건 위선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혼은 막연한 개념이고 환상에 머무른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의 권리를 비중 있게 다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가슴 뻐근한 슬픔을 안겨줘 인상적인 표지이야기였다.
한윤기: 한비야씨의 파키스탄 리포트의 울림에도 여기 위원 모두 동의하는 듯하다. 하지만 한비야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는 점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됐다.
김민정: 그에게 지면을 너무 할애했다. 한국 언론들이 카트리나 재해 때와 다르게 이 재난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주제 선정의 탁월함은 인정하나 분석 기사가 없어서 아쉬웠다. 사태의 개요, 인재의 가능성, 국제 지원 현황, 등을 다루지 못했다. 한 개인의 영웅적 구조 활동에 치우치고 인도주의적 접근이 강조된 감이 있다.
국내의 반APEC 흐름 짚기 미흡했다
최영선: 586호 특집 ‘배추의 비밀,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정말 ‘빙고’다. 농산물 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속시원하게 파헤쳐줬다. 제값 받지 못해 우는 농민과 국산을 명품으로 대하는 소비자들이 겪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줬다.
한윤기: 개괄적인 문제제기에 이어 르포, 농안법 검토와 대안 제시 등이 이어지면서 전형적인 구성을 갖춰 독자들의 논리 흐름에 맞았고, 덕분에 기사들을 읽는 게 편했다.
염인선: 그동안 궁금했던 문제들을 속시원히 해결해줬다. 그러나 마지막 기사 제목 ‘농협 하나로마트는 경쟁력이 있나’는 작은 사실을 보여주고만 있어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 제목이 됐다.
김지혜: 78쪽의 표도 어려웠다. 숫자들에 구체적인 범례가 있었더라면.
이만석: 585호 표지 ‘아세안 APEC을 쏘다’는 아세안 3개국 전·현직 정상 인터뷰로 내밀한 고급 정보를 제공해 유익했다. 하지만 국내의 반APEC 흐름을 충분히 다뤄내진 못한 듯하다.
최수근: 제목의 날카로움에 비해 본문은 무언가 부족하다. 차라리 지난해의 칠레 산티아고 정상회의에서 협의된 7대 과제를 현재 짚어보면서 본질적인 비판을 해보는 건 어땠을런지.
김지혜: 겉표지의 사진에 APEC 로고가 흐릿하게 나와 있다. ‘2005 KOREA’라는 글자도 애매하게 새겨져 있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만석: 583호 특집 ‘소록도의 희망은 꺼지지 않는다’는 한센인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한겨레21>의 결정판 기사였다. 이제 정부의 무관심과 정책 미비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할 것이다.
염인선: 한 번 기회를 만들어서 우토로 문제와 한센인 정책에 대한 외교통상부의 입장을 듣고 싶다. 외교 마찰을 이유로 늘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지, 다른 묘안이 있는지, 이 문제에 눈과 귀가 쏠리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한윤기: ‘한센병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의학자’로 기억될 뻔한 미쓰다 겐스케를 재평가한 ‘가해자’ 기사가 돋보였다. 그리고 일본 양심세력들의 진심 어린 활동을 보며 “이런 이들이 일본에 있다니"라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눴는데, 이런 기사들이 더 나와서 일본을 제대로 아는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
김지혜: 582호 ‘덤프는 말한다’는 덤프트럭 세계의 복잡한 임금 구조와 노동권의 부재를 잘 보여줬다.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장부일지 한 장의 사진이 힘겨운 현실을 극명히 드러냈다. 김지훈씨라는 한 인물을 내세운 표지사진은 투쟁 관련 보도사진보다 집중도가 높다.
정치기사 신중히, 인물 사진 눈에 띄네
염인선: 오마이섹스 ‘대화’ 편에서 남성의 성기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부담스러웠다. 표준어이긴 하나 좀더 순화된 말을 쓰면 안 될까. 585호 ‘푸켓에서 신포도 게이가 되다’는 솔직히 좀 ‘깼다’. 지금까지의 문화 기사와 다른 접근법을 취했는데 별 메시지가 없다는 느낌을 줬다.
김지혜: 나도 많이 놀랐는데, 오히려 그들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걸 자연스럽게 환기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수근: 584호 정치 ‘정치 컨설턴트가 떠오른다’는 의원들이 이면계약을 맺고 컨설팅 업체에 상당한 비용을 낸다고 언급했는데, 이건 불법이지 않나. 법정 선거 비용을 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장 스케치를 할 때는 이런 의혹을 해명해주는 상자기사를 꼭 붙여주기 바란다.
최영선: 정치 기사는 <한겨레21>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튼튼한 정치 구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를 써달라. 또 ‘외국기업 한국인 CEO’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최소한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할지 않을까.
염인선: 583호 경제 ‘퀄컴의 코털을 건드리면 탈난다’에서 언급된 국산 기술의 성과가 짧게 언급돼 아쉬웠다. 정보기술 소비 강국이라는 현실 속에서 이뤄낸 이 개발은 1쪽 이상의 성과다. 584호 경제 ‘도심 속 막장 인생, 택시의 비명’은 582호 덤프트럭 표지이야기를 연상시키면서 택시기사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버스업계와의 대비도 효과적이었고. 좀더 지면을 할애해 법률 개정, 사업장의 개선 등 구체적 대안을 담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김지혜: 583호 원샷 ‘김치야 고생 많다’의 붉은 색채감은 꽉 찬 이미지로 다가왔다. 침이 고인다. 583호 사람과 사회 가톨릭 병역거부자 유효근씨 사진은 벽 너머 앵글과 식탁, 컵, 옷 등이 그의 고민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585호 김창석의 도전인터뷰의 정희진씨 사진도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댄 포즈를 담아내어 자기 주장이 강하면서도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그의 특징을 잘 포착했다. 586호 사람과 사회 ‘순종과 성 개방의 여신?’의 세 컷 사진은 모두 기모노 이미지라 밋밋했다.
한윤기: 과거의 ‘쾌도난담’ 같은 논쟁적인 코너가 부활되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 언론은 세계 면 기사에 약한데, <한겨레21>이 소재를 열심히 발굴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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