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6년 1월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5년 4월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면서 우리 정치에 ‘관용과 자제’를 주문했다. 직후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됐다. 내란 청산의 바람이 우리 사회 공동체를 뒤흔들었다. 가장 먼저 스스로를 청산했어야 할 국민의힘은 변화를 거부했다. 새해 벽두에도 이러한 구도는 이어지고 있다.
2026년은 ‘관용과 자제’가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 정치는 ‘관용과 자제’를 실천할 수 없다. 단지 세력, 정당, 정치인의 타락 때문만이 아니다. 현실 정치의 문법 자체가 그런 조건 위에 있다.
오늘날의 현실 정치는 상대를 반대하는 것으로 자기편을 조직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정치의 동원 메커니즘에 ‘관용과 자제’를 넣으면 ‘남 탓’이라는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상대가 내란을 반성하지 않는데 어떻게 관용을 보이겠는가? 상대가 결국 이겼음에도 만족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데 어떻게 자제하겠는가?
물론 문제의 원인이 그저 ‘남 탓’이라면 어느 한쪽이 거듭나는 것으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상대를 반대하는, ‘반대의 정치’가 표준이 된 이유를 살펴보면,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남 탓’은 태도인 동시에 전략이다. 핵심은 효율이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주장보다는, ‘저 사람들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가 훨씬 효과가 크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는 곧 선거이며 선거란 곧 다수가 되는 것인데, 이에 이르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정치가 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윤석열의 방어 논리에도 이런 원리가 반영돼 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정당성이 없다. 그래서 윤석열은 ‘민주당이 더 나쁘다’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이런 시도는 일부 효과를 거뒀다. ‘불법적 비상계엄은 나쁘지만, 민주당이 원인을 제공했고 이재명 정권이 탄생하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식의 악선동이 먹힌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선전한 것은 이런 이유다.
돌이켜보면 윤석열은 자신이 후보로 나선 대선 때도 같은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또한 같은 방식의 정치를 집권 세력 내에 적용해 여당을 장악하는 데 활용했다. 그 시기를 겪으며 안주하게 된 국민의힘은 지금도 중도 공략을 위한 태세 전환을 곧 하겠다면서도, 이재명 정권 반대 전선을 키우기 위한 무리수를 던지는 것 이상의 정치 전략을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 쇄신을 거부하고 오히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공격에 몰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해야 작은 기득권을 손에 쥔 상태로, 변화를 거부하면서(status quo)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윤석열식 정치가 가져온 이 여파는 결국 국민의힘을 지방선거 패배의 길로 이끌 것이다.
물론 집권여당도 정치 전략으로서 이런 접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들에게 검찰개혁은 합리적 제도 설계가 아니라 ‘검찰독재 세력’을 반대하는 것 자체이다. 사법개혁도 ‘부역자’인 조희대 사법부에 대한 반대이지 실제 제도를 개혁하자는 게 아니다. 그래서 완성도가 높지 않은 제도와 법안이 자꾸 나온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까지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 처리 직전 내용이 대거 수정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난 것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권이 다른 점이 있다면, 나름대로 통치세력으로서 기본은 한다는 것이다. 공천 경쟁으로 강경일변도가 된 여당에 청와대가 거듭 브레이크를 거는 구도의 반복이 이를 보여준다. 이는 대통령이 특별히 훌륭한 정치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으면 보통은 그렇게 된다. 선거에 이기는 게 전부인 당과 실제 통치를 책임지고 성과를 내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은 종종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 의원의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은 그러한 입장 차이를 극단적 방식으로 보여준 사례 같다. 이는 ‘관용과 자제’일까?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모순적 대목도 눈에 띈다. 이혜훈 후보자는 윤석열을 옹호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그야말로 여과 없이 입에 담아왔다. 관용과 자제가 없는 인사라는 뜻이다. 이러한 무관용에 대한 관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답하기 위해선 좀 멀리 돌아가야 한다. 이런 인사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중요한 부처 수장 자리에 상대편 인사도 앉혔다’는 장면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게 왜 하필 이혜훈 후보자 지명이냐고 하는 시각도 있을 텐데, 오히려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이혜훈이어도 상관없다’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실제 정치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던 이혜훈 전 의원이 아니었으면 이런 시도는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입 대상이 된 사람은 진영 논리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왜 꼭 상대편 인사를 써야 하는가?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대로 충정의 문제일 수 있다. 국민 통합을 위해 힘쓰고 위기관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설명하면 절반의 진실이다. 결국 정치적 효과를 의도했다는 해석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026년 1월1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에서 문 전 대통령과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는 구도의 재편이다.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은 사실상 수권세력의 능력을 잃었다. 앞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통치세력 역할을 더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의힘이 스스로 비워놓은 중도라는 공간을 그대로 놓아둘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이전 ‘민주당은 보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계속 이런 방향으로 가려면 이재명 정부는 초당파적 통합의 외양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시도의 최종 목적지는 민주당이 유일하게 주류를 대표하는 정당 체제이다.
둘째는 지방선거 영향이다. 각 언론이 보도한 새해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2026년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절대 우세가 예상된다. 단, 선거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시장 선거는 장담할 수 없다. 유권자 구성과 그간 정치적 맥락 등을 고려할 때, 서울은 앞서 보수정치가 구성해놓은 민주당 반대 전선이 여전히 작동하는 지역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 얘기를 하면 다들 부동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동산은 방아쇠다. 당겨지면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반대가 활성화된다. 서울 일부 계층 유권자는 민주당 정권 때문에 계속 손해를 봐왔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이재명 정권에 대해 ‘역시 민주당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부동산 정치가 형성한 구도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집권 세력으로서는 최대한 ‘민주당 정권인데 민주당 같지 않다’는 평가를 들어야 승산이 있다.
이번 선거의 경우 이 방아쇠가 경제정책 전반의 성적과 연결돼 있다. 환율, 물가, 부동산, 주식시장이 모두 한 덩어리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상태이기에 그렇다. 이재명 정권이 능력을 발휘해 위기관리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외변수를 어떻게 뜻대로 통제하겠는가. 이 경우 유권자는 경제정책의 성패 자체도 보겠지만 이재명 정권이 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볼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상대 정당에서 기획예산처 장관을 데려왔을 정도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는 논리를 댈 수 있다면? 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아닐 것이다.
이게 이혜훈 후보자를 둘러싼 정치의 정체이다. 오늘날 현실 정치에서 ‘관용과 자제’는 교과서적 해법이 아닌, 이러한 외설적 방식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즉, 이러한 방식의 다소 억지스러운 ‘관용과 자제’에 만족하거나, ‘남 탓’의 악순환 속에 남아 있거나라는 양자택일 상황이 우리 눈앞에 놓인 현실 정치의 처지이다.
그렇다면 좀더 나은 ‘관용과 자제’는 어디서 찾고, 무엇을 해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방식의 정치는 여의도에 한정된 게 아니라 우리 삶 깊숙이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젊은 세대의 보수화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취급될 것이다. 젊은 세대는 왜 보수화하는가?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취업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계약직으로만 이어지는 불안정한 노동 현실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안정적 직장을 기대할 수 없다면 지금의 일이 나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라도 돼야 한다는 능력주의적 세계관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일하는 공간은 자기계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터에서 만난 윗세대는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기보다는 부조리한 일에 노출하는 등 이용하려 들기만 한다.
현실 정치는 불만을 매체·플랫폼·커뮤니티 등을 통해 보수적, 나아가서는 극우적 형태의 정치로 조직화한다. 이건 젊은 세대가 보수화되는 하나의 경로를 도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핵심은 개인 경험을 ‘반대의 정치’라는 효율적 방식을 통해 소재로 동원하는 문법이 이미 일반화됐다는 것에 있다.
이 체제를 극복하려면 이재명 정권이 통치자 입장에 섰을 때 왜곡된 형태로나마 ‘관용과 자제’를 구현했듯, 더 많은 개인이 ‘반대’에서 벗어나 통치자적 경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근본적 차원의 참여 혹은 심의 민주주의 확대가 필요하다.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있지만 기본은 여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 이런 주제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그러나 그 기틀을 만드는 초석은 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주류의 길을 간다면, 비주류 또는 대안적인 길은 극우정치가 아니라 더 진보적인 정치가 형성해야 한다. 그러한 기회를 다른 정치세력들이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 길을 닦을 수 있을까? 조국혁신당일까? 진보당일까? 그걸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관용과 자제’란 말을 더욱 슬퍼 보이게 한다. 갈 길이 아직 멀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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