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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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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윤 어게인’에 자양분 더 주지 않으려면

본회의 직전 수정된 ‘내란재판부법’… 내란 청산에만 갇힌 “몹시 나쁜 전례”
등록 2025-12-25 21:12 수정 2025-12-26 08:21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2025년 12월2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통일교 특검법’ 공동발의 관련 오찬 회동을 마친 뒤 양당이 협의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2025년 12월2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통일교 특검법’ 공동발의 관련 오찬 회동을 마친 뒤 양당이 협의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글을 쓰는 시점,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을 수습하는 것으로 시작한 2025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많은 것이 정상화됐지만 아직도 윤석열 정권의 뒷수습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대표적인 게 통일교 의혹이다. 의혹의 본체는 윤석열 및 국민의힘과 통일교의 유착이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이름이 갑자기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모처럼 의기투합해 ‘통일교 특검법’ 발의에 합의했다.

애초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민주당이 끝까지 특검을 거부하리라 본 것 같다. 자당이 특검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던 개혁신당이 사법부가 특검 후보 모두를 추천하는 국민의힘 주장을 수용한 대목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사실 사법부의 특검 후보 추천은 어색한 면이 있다. 수사와 기소를 하는 주체를 판결을 내리는 주체가 선택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주장하는 대로 여의도를 제외한 ‘제삼자 추천’ 형식이라면, 대한변호사협회 등 단체가 주도하는 모양새가 더 알맞다. 그런데도 사법부만 특검 후보를 추천하도록 합의한 것은 정치적 맥락을 빼면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를 증오하다시피 한다. 따라서 사법부가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모양새를 취하면 민주당은 반발할 것이고, 조희대 대법원장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특검을 거부할 것이다.

여당도 발 뺄 수 없는 ‘통일교 특검’

그러면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할 말’이 생긴다. 이 점은 특히 국민의힘에 중요하다. 국민의힘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는 어차피 바닥 수준이고 앞으로 나아질 것 같지도 않으므로, 자기변호보다는 상대를 ‘나쁜 놈’으로 모는 게 유일한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가령 이런 식이다. 여당이 특검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역시 통일교와 유착이 있기 때문일 것이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특검은 절대 수용하지 않는 여당이 긍정한 민중기 특검의 수사 결과는 편향된 것이며, 그간의 ‘사법개혁’ 등 논의도 사법부 장악이 본질이며….

분위기가 잘 잡히면 ‘이런 민주당과 싸우는 것은 모든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로 ‘윤 어게인’을 우회해 개혁신당과 선거 연대까지 기대해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당이 통일교 특검을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분위기는 다시 묘해졌다. 여당은 왜 태도를 바꿨을까? 첫째는 명분이다. 종교의 탈을 쓴 이익단체가 정치인들과 유착 관계를 형성한 것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 대통령이 종교 단체의 해산까지도 언급할 정도이지 않았는가?

둘째는 계산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여당 지지층도 특검을 원한다는 걸 보여준다. 제기된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 해도 여당 사람들이 한 잘못은 개별적으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정도인데, 국민의힘은 ‘정권 차원의 유착’이라는 어마어마한 의혹을 방어해야 한다. 하다못해 경찰이 청탁의 핵심으로 보는 ‘한-일 해저 터널’도 긍정적 입장이었던 인사들은 거의 다 보수 정치에 속한다. 국민의힘이 다소 당황한 듯한 표정이 된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이 문제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법조계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든, 의혹에 연루되지 않은 원내 다른 정당들이 협의하는 것이든, 특검 후보 추천 절차에 대한 합의를 신속하게 이루어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상대가 반대한다’는 핑계로 적당히 뭉개고 갈 사안이 아니다.

3대 특검 또? 이제 일상 수단으로

통일교 특검과 이른바 ‘2차 종합 특검’을 함께 거론하는 기류도 있다. 여당이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주장하는 통일교 특검을 수용했으니, 이제 야당이 윤석열·김건희 등 의혹에 대한 2차 종합 특검을 수용할 차례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안의 성격은 별개다. 본래 특검은 정권이 수사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기관이 공정하게 수사할 수 없는 사건 등을 다루기 위한 제도이다. 통일교 의혹은 여당 인사들도 연루돼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특검 사안이다. 그러나 윤석열·김건희 등에 대한 의혹은 좀 다르다. 애초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은 윤석열 정권에서 거부한 걸 추진한다는 성격이 컸다. 더군다나 인수위도 없이 집권한 이재명 정권 초창기에는 전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이 검찰을 포함한 권력기관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역시 3대 특검은 필요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권 출범 반년이 지난 시점에, 이미 3대 특검이 다룬 사건을 또 특검에 맡기는 건 설명이 쉽지 않다. 수사가 미진한 부분은 경찰 국가수사본부 등이 이어서 하면 된다. 비상시의 수단이 아니라 일상의 수단으로 ‘내란 청산’을 진행하는 일에 착수할 때다. 그래야 청산도 근본적 수준까지 이뤄낼 수 있다. 비상수단은 원래 길게 갈 수 없다.

여당 사람들도 이를 알 것이다. 그럼에도 2차 종합 특검에 힘을 실어온 것은 지지자들의 불안을 반영한 행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 입장인 여당의 정치는 그러한 방식만으로 할 수 없다. ‘진실의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반복 확인되는 긴장 관계도 결국은 이 조건에서 온다.

여당이 내란전담재판부 관련 법안 처리 등에서 맞닥뜨린 상황도 이것이다. 애초 논의는 지지자들의 여망을 반영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나 실제 법을 만들고 적용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르자 대대적 수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당이 최종 통과시킨 안은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예규와 원리상 차이가 크지 않다. 후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권표를 던진 이도 있지만, 언론에 “진작 이렇게 해야 했다”고 한 여당 인사도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2025년 12월24일 국회에서 열린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허위조작 근절을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가결 처리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원식 국회의장이 2025년 12월24일 국회에서 열린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허위조작 근절을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가결 처리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능함을 증명할 시기

분명한 사실은 법제사법위원회까지 거친 안을 본회의 상정 직전 수정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거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당의 이런 방식에 대해 “몹시 나쁜 전례”라고 했다. 여의도 사람들은 이 문제를 법사위에 포진한 이른바 강경파들이 지방선거 출마를 노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당내 경선 통과를 겨냥한 행보라는 거다.

그러나 본선을 고려하면 어떨까? 핵심 승부처인 서울시 같은 곳에서 ‘내란 청산’으로만 승부를 겨루기는 어렵다. 최근엔 환율, 물가, 부동산, 주식시장이 모두 맞물린 그림이 돼 있다. 여기서 성과를 내고 ‘그래도 여당이 일은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야 승기를 잡는다. 즉, 이제는 선거공학으로 보더라도 ‘내란 청산’에 경제와 민생을 더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다. 이 점에서 여당이 검찰, 법원, 특검 등의 키워드에만 집중하는 것은 ‘윤 어게인’에서 못 벗어나는 보수 정치에 기회가 된다.

물론 상황이 거꾸로 갈 가능성도 있다. 정권이 경제와 민생에서 성과를 못 내면, 바로 그 이유로 여당의 지지층 의존이 심화할 수 있다. 현 정권과 여당은 유능함을 증명해야(또는 증명하면) 좋은 정치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어려운 도전이지만 동시에 큰 기회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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