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최저 수준을 경신 중이다. 보다 못한 보수언론이 나섰다. ‘尹 지지율 20%,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국정 쇄신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대통령 지지율 20%’, 각각 2024년 9월19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사설 제목이다. 추석 연휴를 거치며 지지율의 앞자리가 ‘1’로 바뀔 수도 있엄을 예감한 것일까?
‘20%’라는 숫자는 보수층 일부마저 돌아섰다는 걸 의미한다. 영향을 미친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의료대란이다. 의료대란은 유권자 대다수가 직접 체감하는 사안이다. 국민이 겪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진보냐 보수냐에 관계없이 정부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동안 정부가 대응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나마 나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적반하장으로 비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응급의료 상황에 대한 야당의 문제 제기에 ‘가짜뉴스’라며 호통을 쳤다. 가짜뉴스라는데 무슨 실효적 대책을 기대할 수 있겠나? 정부가 의료계를 설득할 복안도 없이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을 고집한 이유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이래놓고 정부는 추석을 잘(?) 넘긴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국민이 참고 희생해가며 정부와 의료계의 부담을 떠안은 데 대해 미안해하는 기색은 없다.
이러니 고령층까지 등을 돌린다는 분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진료받기 힘들어 서럽다는 어르신의 한탄에 정부와 대통령 비판을 너도나도 한마디씩 얹는, 그런 추석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되지 않았겠는가. 연휴 이후 국정수행 지지율의 추가 하락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보수언론의 전전긍긍도 무리는 아니다.
더 곤란한 점은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변수, 즉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여당과의 관계에도 이게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한동훈 대표는 추석 연휴 전 여야의정협의체를 가동해 명절 밥상을 뒤덮을 것이 뻔한 비판 여론을 어떻게든 희석해보려 했다. 그러나 협의체 가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권과 의료계의 비협조 덕분이다.
의료계의 비타협적 입장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동훈 대표는 그럼에도 이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2025년 증원 유예’까지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실제 실현되기 어려운 안이지만 정부의 태도 변화를 시사하는 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마저도 “절대 안 된다”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의료계는 오히려 불참 명분을 얻게 됐다.
정부가 순수하게 2025년 입시의 혼란을 우려한 거였다면, 대신 의료계 및 야당 일각이 요구하는 대통령의 사과와 장차관에 대한 인사 조처를 수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용산은 이러한 방안 역시 거부했다. 이쯤 되면 한동훈 대표가 여야의정협의체 가동을 주도하는 걸 두고 보지 않겠다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게 아닌지 의심이 생길 정도다. 대통령은 일부 ‘친윤’ 최고위원을 관저에 불러 만찬을 함께 해 ‘친한계 패싱’ 평가를 자초하며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이제 의료대란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계기로 한동훈 대표와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따로나기’ 하는 건 상당히 어려워졌다.
보수정치 입장에서 일방 폭주로 인심을 잃은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의 싹을 연속해서 잘라내는 건 최악이다. 그러다보니 보수언론의 주요 인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읍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의 9월12일 칼럼이 그랬다. 양상훈 주필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는 물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도 적대하게 된 이유를 김건희 여사와의 대립에서 찾았다. “두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국정 동력을 축적하고 흩어진 여당의 정치적 기반을 재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김 여사가 대통령을 위해 두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고언했으면 한다”는 게 글의 결론이다. 보수정치의 결집과 정권재창출 확률 제고를 위해 거대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 영부인에게 매달리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면, 애처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수정치 책략가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일까? 김건희 여사는 연휴를 앞둔 시점에 모처럼 광폭 행보를 공개해 뒷말을 낳았다. 대통령과 코드를 맞춰온 홍준표 대구시장마저 “답답하더라도 지금은 나올 때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김건희 여사 문제가 지지율 하락의 세 번째 변수임을 가리킨다.
김건희 여사의 광폭 행보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문제적인데, 첫째는 ‘그림’ 그 자체다. 9월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마포대교를 순찰하는 사진은 누가 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인지 알아달라는 메시지로 느껴진다. 김건희 여사가 ‘SOS 생명의 전화’를 가리키거나 다리 난간을 들여다보며 경찰관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 듯한 모습 때문이다. 실제 김건희 여사는 이 자리에서 “한강대교의 사례처럼 구조물 설치 등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는데, 이건 영부인이 아니라 지도자의 언어다. 참모들이 이런 연출을 제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건희 여사 스스로가 자신을 그렇게 여긴다는 것일까?
둘째는 시점이다. 김건희 여사의 광폭 행보는 검찰이 디올백 수수 의혹에 대해 무혐의로 가닥을 잡고,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이 나오기 직전 시점에 이뤄졌다. 김건희 여사로서는 사법리스크가 이제 해소된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다수 유권자들은 검찰이 알아서 부담을 덜어준 것으로 여길 것이다. 이런 시점에 권력을 과시하는 듯한 광폭 행보는 오히려 의구심을 키울 수밖에 없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은 오히려 새로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전주’ 손아무개씨의 방조 혐의가 유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판결 직후 여당과 보수언론은 손씨와 김건희 여사는 경우가 다르기에 속단해선 안 된다며 분위기를 잡았지만, 김건희 여사 관련 대목이 유독 다수 포함된 판결문 내용이 공개된 이후에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방조 혐의 적용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까지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러면 공은 다시 검찰로 넘어간다. 여러 논란 속에 새로 임명된 검찰총장은 수사지휘권을 회복하고 이제야말로 김건희 여사에 대한 법적 결론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눈 딱 감고 모른 척할 것인가? 이 사안을 억지를 써가며 넘기더라도 또 다른 논란이 기다리고 있다.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가령 관저 공사를 둘러싼 의혹이다. 무자격 업체는 어떻게 관저 증축공사를 사실상 주도할 수 있었는가? 이 업체를 추천한 사람은 누구인가? 전 정권을 향해 서슬이 퍼렇던 감사원은 왜 이 대목에서 솜방망이 조사를 대충 하고 넘어갔는가?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며 국정 동력의 족쇄가 된 가운데, 국회는 2024년 9월19일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을 다시 한번 처리했다. 대통령은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해 배우자를 감쌀 것인가? 지지율 하락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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