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7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7월23일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한 대표가 얻은 득표율은 62.84%로 2위인 원희룡(18.85%) 전 국토교통부 장관, 3위인 나경원(14.58%) 의원을 압도했다. 주목할 부분은 당원 선거인단 투표 80%, 일반국민 여론조사 20%가 반영된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심과 민심의 방향이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후보는 당심(62.65%)과 민심(63.46%)에서 고른 지지를 얻으며 당심과 민심을 하나로 엮어냈다. 러닝메이트였던 장동혁·진종오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된 것도 한 대표가 당 장악력을 높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승리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한 대표의 당선을 누구보다 피하고 싶었을 윤석열 대통령의 존재다.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책임자인 윤 대통령이 아무런 반성 없이 오만한 태도를 보여온 데 실망한 당원들의 지지가 한 대표에게 쏠렸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원 전 장관을 측면 지원하며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까지 일으킨 친윤계(친윤석열계)의 행보는 되레 당무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역풍을 맞았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또한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항마로서 한동훈 대표를 선택했다. 개선의 여지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윤 대통령의 한계를 딛고 정권을 재창출할 인물로 한 대표를 불러낸 것이다. 지난 총선 당시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이재명의 대항마’로 나섰다가 패배한 뒤 대통령과의 친분을 유일한 무기로 내세운 원 전 장관이나 전당대회 과정에서 아예 대선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나 의원은 그런 점에서 전략을 잘못 세워도 한참 잘못 세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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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의 압도적인 당선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싸움에서 미래 권력이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 대표의 당선을 시작으로 당심의 대이동이 펼쳐지며 권력구도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국면으로 재편될 것임을 예고한다. 특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한 대표의 위상은 기존과 질적으로 크게 달라졌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은 윤 대통령의 ‘내리꽂기’로 거저 얻은 거라면 당대표직은 ‘윤석열 아바타’라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도발적인 전략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차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확인된 것은 힘 빠진 친윤의 조직력과 이에 연동해 느슨해진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윤 대통령보다는 미래권력인 한 대표를 향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의 당선은 한편으로는 대결 정치가 더욱 심화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민의힘 당원들이 한 대표에게 원하는 것은 ‘이재명 전 대표를 밟고 승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대표가 야당 대표와 협치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드물다. 반대편에선 민주당 당원들의 지지가 이재명 전 대표에게 몰리는 것도 이러한 대결 정치의 암울한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한 대표는 당대표 경선 토론회 과정에서 같은 당 나경원 의원의 ‘패스트트랙 공소 취하 청탁’을 폭로하는 등 자폭 수준의 폭탄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피아를 가리지 않는 전투력을 확인시켜줬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검사 한동훈’과 ‘피의자 이재명’은 절대 같이 갈 수 없는 구도”라며 “여야뿐 아니라 여권 내의 대치 전선이 모두 가팔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압도적인 지지율로 국민의힘 당대표에 당선됐지만 한 대표 앞에 놓인 과제는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일단 갈라질 대로 갈라진 당심을 수습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 등 친윤계는 전당대회 바로 다음날부터 한 대표가 공언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당대표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심화된 내전의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한 대표의 리더십을 확인하는 첫 번째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약속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어떤 방법으로 추진할지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여기에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 재설정에 더해 당내 반발을 잠재우고 당론을 재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얽혀 있다. 이미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한 야당과의 주도권 다툼까지 생각하면 이제 막 ‘진짜 정치’를 시작한 정치 초보자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과제다. 한 대표는 이 이슈와 관련해 현재까지는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당대표 취임 다음날인 7월24일 기자들과 만나 “제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지만 ‘(당내 여론 취합의) 데드라인을 언제까지로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데드라인을 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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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리스크’도 한 대표가 당장 직면한 과제다. 김 여사는 최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및 명품가방 수수와 관련해 검찰청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조사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며 ‘황제 조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7월23일 “검찰이 수사 방식을 정하는 데 있어서 더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며 민심에 한 발 다가간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그간 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나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서도 ‘김 여사를 통한 로비설’의 정황이 보도된 만큼 민심을 명분으로 태도를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은 “채 상병 특검은 서두르지 않을 수 있지만 김 여사 문제는 당장 수사를 받는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 민심을 가져오려면 김 여사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당원과 국민이 명령한 변화는 첫째 국민 민심에 반응하라는 것, 둘째 더 유능해지라는 것, 셋째 외연을 확장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여당의 변화를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한판 승부를 위한 구원투수가 아니다. 한 대표는 과연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 보수 세력의 근본을 다시 세우는 진정한 리더로 거듭날 수 있을까.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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