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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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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던지고 보는 ‘청년’이라는 전선

청년층 둘러싼 경쟁만 치열한 대선, 여야 모두 갈피 못 잡고 ‘해줄게’ 공약과 구설만 난무
등록 2021-12-04 01:54 수정 2021-12-04 01:54
2021년 11월18일 전국 38개 청년시민사회단체가 꾸린 대선 대응 기구 ‘2022대선청년네트워크’가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후보들이 추상적인 청년의 요구가 아닌 청년 삶의 현장을 담은 정책과 공약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21년 11월18일 전국 38개 청년시민사회단체가 꾸린 대선 대응 기구 ‘2022대선청년네트워크’가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후보들이 추상적인 청년의 요구가 아닌 청년 삶의 현장을 담은 정책과 공약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이번 대선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비전 제시, 의제 설정 경쟁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고 상대방의 언행에서 드러난 구멍으로 하루하루 먹거리를 찾아 연명하는 보릿고개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2030 청년층을 둘러싼 경쟁은 치열하다.

‘논외’였던 2030세대의 폭발적 에너지

과거 선거에서도 청년이나 미래를 내세우지 않은 적이 없지만 대부분 빈말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대체로 지역과 이념이 중첩되면서 첨예한 전선이 형성됐고 세대 대결 역시 이념 대립과 결합해 3040세대와 6070세대의 힘겨루기로 진행됐다. 그런 구도에선 사회의 주류이자 캐스팅보트를 쥔 50대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났고 20대는 대체로 ‘논외’였다. 무엇보다 20대의 정치 관심도와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미래, 경제 이슈와 분별되는 청년 이슈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탓도 있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청년 멘토’ 안철수를 향해 2030세대의 지지와 기대가 쏟아졌지만 결국 구심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마무리됐다.

최근 상황은 완연히 다르다. 2030세대가 폭발적으로 정치적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부터 2030세대는 독자적으로 꿈틀거렸다. 대통령 지지율을 출렁이게 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파동’ ‘가상화폐 파동’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파동’은 2030세대가 독자적으로 주도한 이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의 폭발력을 높인 것도 청년층이다.

이런 사안들은 대체로 ‘공정 이슈’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기회와 출발선은 동일해야 하고 오직 실력으로만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에 가깝다. 가산점과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자를 위한 우대조처)에 대한 거부감이 애초에 강했던데다 4050세대, 진보 진영 기득권층의 ‘내로남불’ 행태가 인화력을 더 높였다.

믿을 수 없는 ‘해줄게’ 공약

2030세대의 정치적 에너지가 또 다른 방향으로 분출되며 나타난 건 ‘젠더갈등’ 양상이다. 2018년 전후 미투운동이 전개된 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번지던 젊은층의 젠더갈등은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선 ‘그들만의 싸움’으로 치부되거나 여당의 압승에 가려졌다. 그러다 4·7 재보궐선거를 거쳐 이번 대선에서 결국 정치를 향해 분출하는 모양새다.

재보선 당시 20대 표심은 60대 이상 고령층 표심과 비슷하게 움직였다. 정부·여당의 반대쪽으로 결집했다. 공정 이슈는 남녀를 공통적으로 자극했지만 젠더 이슈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다. 남성들은 (실제 여부와는 무관하게) 정부·여당을 래디컬(급진) 페미니즘과 동일시하며 강하게 결집했다. 여성들의 반민주당 정서는 그보다 약했지만 성폭력 사건으로 재보선의 원인을 제공한 여당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

재보선에서 분출된 에너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로 이어졌다. 0선 이준석은 ‘이대남’을 호출했고 그 에너지에 보수정당 기존 지지층도 호응해 초유의 30대 원외 1야당 대표를 선출했다. 이대남의 기세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으로 이어져 홍준표 돌풍을 일으켰다. 기존 정치권 시각은 ‘꼰대력’이 넘치는 홍준표와 이대남의 결합을 아직 제대로 풀이하지 못하고 있다.

모르니까 어려운 거다. 여당과 야당이 ‘이대녀’보단 목소리가 큰 이대남에 다소 기울어지는 모습이지만 청년층의 젠더갈등 사이에서 두 당 모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대남 보자니 이대녀가 무섭고 이대녀 보자니 이대남이 무서운 눈치다.

또 다른 화두인 공정 이슈에서도 헤매는 모습이다. 대학입시 ‘수시 대 정시’ 문제, ‘로스쿨 대 사법시험 부활’ 문제에서조차 갈팡질팡하고 있다. 모두 지금에 이르기까지 긴 논의의 역사를 거쳐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쟁점이다. 잘 모르니 일단 던지고 본다. “일자리 늘려준다” “집 준다” “돈 준다” 같은 ‘해줄게’ 공약이 난무하지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믿지 않는 듯하다.

최근 2030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벌어지는 영입 경쟁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조카 교제살인 변론’을 겨냥한 듯 국민의힘은 범죄심리 전문가이자 젠더폭력 문제를 연구해온 이수정 경기대 교수를 11월29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이대남에 구애해온 정당의 ‘확장 행보’다. 하지만 ‘이대남’의 대표 격인 이준석 대표는 ‘지지층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반대했고 남성 커뮤니티의 반발도 거세다. 결국 이 대표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갈등 끝에 서울을 떠나 지방을 돌고 있다.

‘세대 포위’ 형국의 솟아날 구멍

민주당은 30대 여성 항공우주 전문가라며 조동연 서경대 교수를 선대위의 투톱으로 영입했지만 ‘사생활 문제’의 벽에 부딪혔다. 사람을 뽑아놓고 “인재영입위 소관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폭탄 돌리기’ 꼴을 보였다. 어제 저 당에 이력서 낸 사람을 오늘 이 당이 영입하는 코미디까지 속출하는 터다.(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12월1일 ‘이 후보 쪽에 합류한 김윤이(38) 뉴로어소시에이츠 대표가 전날 오후까지도 윤석열 캠프 합류를 타진했다’고 주장했다.)

2030세대가 견인하고 6070세대가 힘을 합쳤던 4·7 재보선의 ‘세대 포위’ 형국이 대선에서 재연된다면 여당의 전망이 극히 어둡겠지만 솟아날 구멍이 보이는 것도 같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그를 둘러싼 5060세대 ‘양복쟁이 군단’의 ‘꼰대력’이 하늘을 찌르면서 80대 김종인, 30대 이준석과 한꺼번에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선거 당일까지 2030세대 표심을 둘러싼 여야의 이런 갈피 없는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이재명과 윤석열, 윤석열과 이재명 두 사람의 비호감 경쟁 또한 날을 더할수록 치열하지 싶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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