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모태는 1980년 12월31일 제정·시행된 ‘언론기본법’이다. 이 법은 문화공보부 장관이 언론사의 등록을 취소하거나 발행을 정지시키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었다. 신군부는 1980년 여름과 가을에 언론인 대량 해직과 언론사 통폐합 조처를 했다. 그 효과를 연장해 언론을 통제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법이었다. 평가할 만한 내용도 있었다. ‘취재원 보호’와 ‘언론인의 진술거부권’을 도입했다. 또한 언론중재 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반론권’과 ‘언론중재위원회’ 제도를 처음 마련했다.
반론권은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반박하거나 보도에서 다루지 않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언론 보도가 허위이거나 진실이 아니므로 이를 ‘정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권리와는 다르다. 언론 보도의 ‘피해구제’라는 요소와 불충분한 언론 보도의 ‘정보보완’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반론권은 언론 보도가 허위인 경우는 물론 진실할 때도 청구할 수 있다. 언론기본법은 이런 ‘반론보도청구권’을 ‘정정보도청구권’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릇된 작명이었다.
1987년 ‘신문법’(정기간행물등록법)과 ‘방송법’이 다시 제정됐다. 언론기본법은 폐지됐다. 언론중재 제도는 신문법과 방송법에 들어갔다. 기존에 없던 ‘추후보도청구권’이 만들어졌다. 언론중재위원 수도 조금 늘어났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권고’ 권한도 그대로 존속됐다. 그러나 반론권을 정정보도청구권이라고 이름 붙인 잘못은 시정되지 않았다.
1996년 신문법이 개정됐다. 세 가지가 바뀌었다. 16년간 ‘정정보도청구권’이라고 잘못 불리던 반론권이 비로소 ‘반론보도청구권’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도 반론보도청구권을 부여했다. 또 민법 제764조가 정한 명예훼손 특칙에 따라 ‘정정보도’를 원할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도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2005년 1월27일 드디어 언론 피해 구제를 목적으로 한 단일법으로서 언론중재법이 제정되고, 7월28일 시행됐다. 2005년 언론중재법은 언론 피해의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 ‘언론사의 언론 보도로 인해 침해된 명예나 권리, 그 밖의 법익’이 다툼의 대상이 됐다. 이를 ‘인격권’이라고 규정했다. 사망한 사람도 일정 기간 법의 보호를 받았다. 법의 적용 대상을 ‘인터넷신문’까지 확장했다. 정정보도청구권이 정식으로 언론중재법에 도입됐다. 정정보도청구권은 사실적 보도가 진실하지 않을 때 부여됐는데, 언론사의 고의·과실이나 위법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도 보장됐다. 법원에 제기하는 정정보도청구 소송을 민사집행법의 가처분 절차에 따르도록 했다.
또 ‘손해배상청구권’을 신설했다. 피해자들은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손해배상 조정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2005년 법은 고충처리인 제도를 신설하고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제도를 신설했다. 더불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진짜 ‘중재’ 제도를 도입했다. 2006년 헌법재판소는 정정보도청구권 소송을 본안 소송 절차가 아니라 가처분 절차에 따라 재판하도록 한 규정을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2009년 개정된 언론중재법은 적용 범위를 인터넷뉴스서비스(포털)까지 확장했다. 이후 언론중재법은 크게 개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입법 시도는 왕성했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제19대와 제20대 국회에 발의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모두 21개였다. △기사 삭제 △기사 열람 차단 △악의적 허위 보도에 대한 3배 이내 손해배상 △명백한 오보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의 정정보도문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가짜뉴스나 허위 보도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시정명령 △유사 뉴스서비스나 댓글, 복제·전파물에 의한 피해구제를 언론중재위가 조정하는 것 등이 포함됐다. 이외에 갖가지 내용이 제안됐다. 자구 몇 개를 고친 것 외에 대부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기사열람차단청구표시’ 등 정교하게 다듬어야현행 제21대 국회에는 개원 1년여 만에 16개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2021년 7월27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는 ‘대안’을 ‘의결’했다. 특히 ‘기사열람차단청구권’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5배 이내의 손해배상’ ‘고의나 과실에 의한 손해배상액 산정에 매출액의 1만분의 1~1천분의 1을 반영’하도록 한 점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기사열람 차단은 ‘기사 삭제’와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엄격하게 그 행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기사열람 차단을 청구하는 것만으로도 ‘기사열람차단청구표시’를 하도록 한 내용은 지극히 위험하고 ‘전략적 호도’ 전술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징벌배상이나 일반 손해배상 조문을 보건대, 명확성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심사라는 위헌성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려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언론 보도 피해자를 구제하는 손해배상액이나 징벌배상액은 언론사들의 매출액 현실을 고려할 때, 오히려 피해구제에 역행할 수도 있다(8월19일 국회문체위 전체 회의에서 통과된 개정안에는 ‘열람차단청구표시’ ‘손해배상액 산정액에 매출액 반영’ 규정은 삭제됐다).
현재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 의한 언론 피해 손해배상액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법원, 언론중재위원회와 중재위원들의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언론중재위원회는 2019년 손해배상 조정액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고 사안에 따라 최고 5천만원까지 산정할 수 있는 새 기준을 만들어 중재위원들에게 공람까지 시켰다. 구제액수가 너무 낮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해결하는 데 중재위원회, 법원 재판부는 귀를 열고 해야 할 일을 해줘야 한다. 언론은 보도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정확하고 공적인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 언론 피해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언론사와 언론인단체는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배액배상’ 제도가 언론의 취재보도 자유를 위축시키고, 공인과 기업의 ‘전략적 봉쇄 소송’을 남발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실한 언론의 취재보도에 대한 우리나라 법원의 강한 보호 법리를 고려할 때 언론계 반응은 ‘엄살’에 가깝다. 의도적인 조작 정보나 악의적인 허위 보도는 공적인 여론의 장을 오염시킬 뿐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될 수 없다. 따라서 언론계 역시 더 정확하고 알찬 뉴스 정보를 생산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언론 피해 구제액이 낮다는 인식, 한국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이 낮다는 현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별개의 사안으로 그 대응 방식이 달라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여론의 지지를 내세워 서로 다른 사안들을 ‘징벌적 손해배상’ 법률안으로 묶어 징치(징계하여 다스림)하려는 접근을 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것은 ‘언론’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한국언론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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