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악마로부터 의원님을 구원해달라고요.”
“의원님도 장애인 아닙니까. 장애인이 우리나라에서 차별받는 게 뭐가 있어요? 특혜를 받았으면 받았지.”
“우리나라는 부문별로 차별을 금하는 법이 제정돼 있기 때문에 평등법은 필요하지 않아요. 철회해주세요.”
평등법 발의 전후로 문자·전화 폭탄이 쏟아졌다. 내 휴대전화로 하루 평균 문자 700여 개, 전화 200여 통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화는 새벽 시간을 포함해 24시간 울렸다.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사무실과 대전 지역구 사무실에도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전화를 받으면 혐오표현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럴수록 평등법이 더 빨리 제정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2021년 6월16일 평등법을 대표 발의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 추진한 지 15년 만에, 민주당 차원에서는 8년 만에 평등법이 발의됐다. 2020년 7월 동료 의원들과 시민단체에서 나에게 평등법 발의를 요청해왔다. 보수 기독교계에서 반대가 극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평등법 총대’를 메기까지 솔직히 1초는 멈칫했다. 하지만 ‘맡아야겠다’는 결단을 하는 데는 2초를 넘기지 않았다. 다선 중진으로서 비겁하게 회피하지 말고 솔선수범하자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요청이 들어온 이유도 내가 경험 많은 5선 의원인데다 평등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장 출신이고, 장애인(내게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 3급 장애가 있다)인데다 평등법 제정 운동을 앞장서 해오지 않은 정치인으로 법안 제정을 위한 확장성까지 고려됐을 거라고 짐작했다.
평등법은 앞서 발의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차별금지법안과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차별금지법은 부당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는 소극적·방어적 의미라고 봤다. 이뿐 아니라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을 해소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미의 실질적 평등 구현이 필요하다. 평등법은 이 두 축으로 구성됐다.
다음으로, 장혜영·인권위안은 네 개 영역(교육,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용, 행정서비스 제공·이용)에서만 차별을 금지한다. 반면 평등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는 물론 디지털·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영역 등 모든 영역에서 적용되도록 했다. 평등법은 이 모든 영역에서 차별 금지, 피해 구제, 차별 예방 등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평등법은 애초 2020년 말에 발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6개월 이상 지연됐다. 지난한 의견수렴 과정이 있었다. 예를 들어 보수 기독교의 거센 반대를 완화하기 위해 ‘종교활동은 부당한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러자 평등법 제정에 찬성하던 불교계가 ‘기독교계의 사주로 이 조항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기독교계도 ‘위장술일 뿐’이라고 외면했다. 평등법 제정을 찬성하는 시민단체들에서도 ‘후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조항이 돼 삭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한 법안 내용 수정·보완, 동료 의원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설명 과정 등이 계속 이어졌다. 또 당내에서는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법안 발의에 신중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10명 중 9명이 찬성하지만2020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9명(88.5%)가량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 또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10만 명 넘게 서명해 법안이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회부됐다. 평등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반대도 거세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오류가 있다. 첫째, 동성애 반대 발언 등을 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평등법 안에는 형사처벌 조항은 없으며, 이 법이 아니더라도 악의적인 차별을 하면 개별 법에서 처벌받는다.
둘째,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미 우리 헌법에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여야 하고’,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제1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헌법정신을 구체화한 평등법에 합의가 없다는 말은 비겁하다.
셋째, 성별과 성별 정체성 관련해 가족관계 혼란·붕괴, 병역의무 회피 수단으로 악용 등의 우려가 있다고 한다. 이는 ‘성별 정체성’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다. 성별 정체성은 외부 변화에 따라 쉽사리 변경되지 않으며, 성별 변경 주장만으로 병역의무가 면제되지도 않는다. 의사의 증빙을 요구하며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속임수를 쓴 사람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므로 악용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성별, 학력 등을 이유로 한 배제 표현이 금지돼 대졸 공개채용도 불법이 될 소지가 있으며 학사, 석·박사 간 연봉 차이도 차별 시비가 있을 거라는 주장이다. 부당한 차별과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차등적 대우가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로 인정되는 게 아니다. 차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야 한다. 학력·고용형태에 따른 차등적 대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보고 판단하므로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차별금지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된 적은 있었지만 논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국회가 무관심했던 탓이다. 이번엔 다를 것이다. 달라야 한다. 국회 안팎에서 계속 공론화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이 추동력으로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되도록 해야 한다.
6월23일 나와 박주민·권인숙 의원이 평등법 토론회를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었다. 이렇게 당내에서 작은 눈덩이를 굴려 큰 눈덩이로 만들어 평등법을 민주당 당론으로 만들어갈 생각이다. 평등법 제정 당위성을 널리 알리고 반대 주장의 오류가 드러나게 함으로써 평등법 제정의 강력한 추동력을 구축할 계획이다. 그렇게 눈덩이를 더욱 크게 만들어 마침내 평등법 제정을 이뤄내기 위해 지치지 않고 노력해나가도록 하겠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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