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산에서 4·7 재보궐선거를 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민심은 여당에 매서운 회초리를 내리쳤다. 선거 뒤에도 큰 변화가 없는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알 수 있듯, 야당은 재보선 회초리 노릇을 할 만큼의 신뢰만 회복한 상황이다. 대승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더 큰 혼란상에 빠지는 형국이지만 여당이 직면한 위기는 그 차원이 다르다. 이번 선거 결과는 거대한 빙산이 수면 위로 머리만 드러낸 꼴이다. 당·정·청의 총체적 문제가 점점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간단히 복기해보면 이번 선거는 시종일관 여당에 불리하게 진행됐다. 여당 소속 전임 시장들의 ‘성 비위’에 따른 궐위로 출발한 보궐선거인데다, 이 선거가 대통령 임기 5년차까지 유예되고 누적된 국정에 대한 평가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극기 부대’ ‘막말’ 등 차마 손이 가지 않게 했던 야당의 부정적 요인이 상당히 저하됐다. 이런 상황은 모두 여론조사에 고스란히 실시간으로 반영됐고, 선거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이번 선거 결과 예측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선거 이후 여야의 과제도 제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필자 역시 여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에 대해 한 언론 지면을 통해 “‘총선에서 범여 180석이나 되는 의석을 몰아줬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것과 ‘오만과 독선으로 밀어붙였을 뿐 민생과 민심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것의 공통점은 ‘죄송하다’뿐이다. 반성의 방향도, 수반되는 변화의 방향도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4·7 재보선 이후 곧바로 이어질 당대표 경선의 쟁점도 이 대목일 것이다. 집토끼, 강성 지지층을 대변하는 전자의 흐름과 산토끼, 중도층으로 확장성을 중시하는 후자의 흐름이 충돌하고 논쟁해서 민심을 수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상황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 여당이 민심에 부합하는 혁신 방향을 잡는다면 대선 전망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대선 결과도 좋지 않을 것이다. 10년 전과 5년 전의 사례가 이를 증명 한다.
이번과 닮은꼴 선거였던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전개가 그랬다. 대통령 임기 4년차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화된데다 당시 여당 시장의 돌발적 사퇴로 발생한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과 시민사회, 여기에 장외의 안철수까지 힘을 모아 박원순을 내세워 승리를 거뒀다. 서울시장 선거 이후엔 ‘디도스 사태’(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기관·금융회사·포털 등이 디도스 공격을 받아 서비스가 중단됨)까지 터졌다. 하지만 여당은 패배 이후 위기감 속에 비주류 수장인 차기 주자 박근혜에게 힘을 실어주며 혁신에 몰두했고, 1년 뒤 총선과 대선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뒀다.
반대 사례의 주인공도 박근혜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1년 전 2016년 총선에서 온갖 무리수를 쓰며 스스로 보수 지지층까지 무너뜨렸다. 그런데 패배 이후에도 대통령의 복심인 이정현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하며 역주행했다. 결국 이듬해 탄핵을 맞이 했다.
‘유의미한 비주류’ 없는 민주당간단한 이치다. 회초리를 맞고 정신을 차리면 대선에서 이겼고, 회초리를 맞고도 민심을 거스르면 몽둥이를 맞는 법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 역시 2011년 박근혜의 길과 2016년 박근혜의 길이라는 갈림길에 처해 있다. 원내대표 경선과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지켜보면 민주당의 발길이 들어서는 방향이 대강 보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선 좋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구성원 가운데 ‘오만과 독선이 문제였다. 민심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쪽이 다수인 것 같긴 한데, ‘대오를 흩트리면 안 된다. 더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는 쪽의 목소리가 더 크다. ‘문파’로 불리는 일부 강성 당원만 그런 것이 아닌 게 더 문제다.
21대 국회에서 사무총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내며 강경론을 주도해온 윤호중 의원의 언행에서 ‘민주당 주류’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윤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특정인과 특정 세력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과거에도 선거 결과를 놓고 편을 갈라 당이 분열 위기에 처한 적이 여러 번 있다”며 ‘단합’을 강조했다. 그는 협치 복원을 위해 야당에 상임위를 재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으로 보장된 위원장 임기를 새로 들어선 지도부가 뒤집는 것도 적절한 모습은 아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여야가 원구성 협상보다는 민생을 살리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해선 “시한을 정하진 않았으나 차근차근 추진할 것임은 틀림없다”고 예고 했다.
강성 지지층이나 윤 의원 등 일부 주류 핵심 의원의 문제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자랑해 마지않는 ‘원팀’ 구조가 스스로 발목을 잡는 핵심 구조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민주당은 ‘유의미한 비주류’가 없는 단일대오 정당이다. 선거에서 지면 간판이라도 갈아야 하는데 온통 한 몸이다보니 책임을 물을 대상이 오히려 혁신의 기수로 나서고 있다.
게다가 재보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권리당원 비중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원팀’은 더 강화될 것이다. 정당의 인기가 떨어지면 이른바 ‘라이트한 지지층’은 이탈하거나 입을 다물어버린다. “상황이 안 좋을수록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한다.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흔들리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도드라지게 된다. 강성 당원의 비중과 영향력은 더 높아지게 마련이다. 소금물의 증발량이 많아지면 소금 농도는 더 높아지는 이치다.
대표 경선이나 대선 주자 경선이 혁신의 장이 되면 다행이지만, 정반대로 강성 당원과의 밀착도를 높이기 위한 선명성 경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큰 이유다. 만약 이런 선명성 경쟁이 이어진다면 여당과 민심의 괴리는 더 커질 것이다. 그 결과를 예측하긴 그리 어렵지 않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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