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10월29일 마무리됐다. 국회는 20여 일 동안 행정부의 정책 시행과 예산집행이 적절했는지 점검했다. 그런데 행정부를 감시하는 국회도 예산을 적절하게 썼냐고 따져 묻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시민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 단체는 아직까지 지출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눈먼 돈’으로 꼽히는 입법·정책 개발비(약 86억원), 정책자료 발간·발송비(약 46억원), 특정업무경비(약 179억원)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며 국회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국감 기간에 성과도 냈다. 이들이 탐사보도 전문매체 와 함께 입법·정책 개발비 유용 의혹을 제기한 뒤 이은재(자유한국당·1167만원), 백재현(더불어민주당·3천만원), 황주홍(민주평화당·1200만원), 강석진(자유한국당 1150만원) 의원 등이 최근 국회사무처에 부적절하게 쓴 돈을 반납했다.
국회 상대로 정보공개청구·행정소송10월3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를 만나 국회 예산 감시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처음에는 일부 예산을 좀 뻥튀기했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료를 볼수록 당혹스러웠죠. 왜 국회가 별것도 아닌 자료를 끝까지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지 이해되더라고요.”
세금도둑잡아라는 2017년 9월 입법·정책 개발비의 지출 내용 공개를 거부하는 국회사무처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승소했지만 국회가 항소했고, 지난 7월5일 서울고등법원이 다시 세금도둑잡아라의 손을 들어줬다. 입법·정책 개발비는 말 그대로 국회의원이 입법을 위해 외부 연구용역을 맡기거나 전문가·시민단체들과 토론회 등을 여는 데 쓰라고 주는 돈이다.
하 대표는 2심 승소 뒤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국회의원 151명이 발주한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의 자료 338건(정책연구용역 내용과 용역 수행자 이름이 담긴 목록)을 열람하다 곳곳에서 수상한 내용을 발견했다. “최소한 대학교수라든지 전문가 등이 용역 연구 수행자로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자유기고가, 무직, 연구와 전혀 관련 없는 중소기업 임원 등이 연구용역을 수행했다고 기록된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죠.”
실제 추가 확인한 결과, 이은재·황주홍 의원은 보좌관의 지인에게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이를 다시 돌려받는 식으로 각각 1220만원과 600만원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서청원 의원은 건설·토목회사 임직원에게 북핵 위기, 인사청문회 제도에 관한 2건의 연구용역을 발주(1천만원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석진 의원은 허위 서류를 꾸며 대학생에게 250만원의 정책연구용역과 발제를, 보좌진의 배우자 등에게 4건(850만원)의 용역을 발주한 의혹을 받고 있다.
입법·정책 개발비 낭비가 관행이라고?하 대표는 “의정활동을 잘하라고 지원해주는 세금인데 이를 제대로 쓰지도 않고 쓸 역량도 안 된다고 의원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돈을 줘도 제대로 쓸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세금도둑잡아라 등은 10월24일 해당 의원들을 검찰에 사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문제는 입법·정책 개발비를 ‘쌈짓돈’으로 쓰는 행태에 일부 의원과 보좌진이 “관행”이라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시민사회 운동을 해와 국회에도 인맥이 넓은 하 대표는 최근 국회의원들과 보좌진들에게 자주 ‘항의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그냥 봐주면 안 되냐, 관행인 거 알면서 왜 그러냐’는 반응이 많죠.”
하 대표는 “연구용역과 수행자 이름만 봐도 이런 행태가 터져나오는데 실제 정책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곳곳이 지뢰밭일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는 정책연구용역의 보고서와 정책자료집 본문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하 대표와 단체들은 “국민 세금을 들여 수행한 정책연구용역 보고서와 정책자료집은 국민의 자산으로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며 10월30일 국회 사무처에 비공개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의신청이 접수되면 7일 이내에 정보공개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또한 하 대표는 소송을 통해 “국회가 특정업무경비와 정책자료 발간·발송비 집행 내역과 증빙서류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을 지난 8월 받아내고 현재 관련 자료 열람을 기다리고 있다. 특정업무경비는 정부 기관의 수사·감사·예산·조사 등 특정업무 수행에 쓰라고 지급되는 예산으로, 지금까지 지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눈먼 돈’으로 지목돼왔다. 마찬가지로 정책자료 발간·발송비도 공개된 적이 없다.
하 대표는 국회를 상대로 20대 국회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의장단·정보위원회 해외출장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피감기관의 해외출장 국회의원 명단 등을 공개하라는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변호사인 하 대표가 대부분 직접 소장을 쓰고 재판에 나서고 있다.
특권·특혜 없애 일하는 의원 늘리자비례민주주의연대(공동대표), 녹색당(공동운영위원장) 등에도 몸담은 하 대표는 유권자의 표심과 다양한 민의가 국회에 반영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 의원 수가 늘어나야 한다는 소신도 갖고 있다. 그런데 그가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시비를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 대표는 “잘못된 특권과 부패를 줄이고, 엉뚱한 데 쓰이는 예산을 바로잡는 것이 제대로 된 정당과 국회를 만드는 일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그 바탕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잘못된 특권과 특혜를 없애면 지금 예산으로 의석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돈을 엉뚱한 곳에 쓸 게 아니라 그 예산으로 제대로 일하는 의원을 늘리자는 겁니다. 선거제도를 바꿔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진출하면 ‘관행’이라 말하는 기존 정당들의 문화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하 대표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예산 감시 기구도 구성해 국회 예산을 국회 안팎에서 감시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세금도둑잡아라는 국회에서 받은 예산 지출 내용과 증빙서류 등을 누리집 등에 공개하며 자료를 쟁이고 있다. 하 대표는 “국회에 요구한 자료를 다 받아내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영수증 전시회라도 열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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