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군인 출신인 ㄱ씨는 자신을 “보수·우익론자”라고 불렀다. 옛 통합진보당을 “헌법 파괴 세력”이라 칭하며 정당 해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재 국가보훈처 관련 조직에 근무하고 있다. 그런 그도 박승춘 보훈처장의 최근 결정 가운데 두 가지는 “완전히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보수 인사들도 “광주에 그럴 순 없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5월 광주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민주유공자회 등의 항의를 받고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보훈처가 지난 5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을 다시 불허한 데 대해 “그걸 (제창으로) 부르면 어떤가? 박승춘 처장이 왜 반대해 사회 갈등을 일으키냐”고 했다.
보훈처가 올해 한국전쟁 66주년 기념 광주 지역 시가행진에 제11공수특전여단의 참여를 추진한 데 대해선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 부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에게 총을 쏜 계엄군이었다. 보훈처는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진 광주 금남로를 거쳐가는 행진에 참전용사, 광주 향토사단(제31보병사단)과 제11공수특전여단 소속 군인들을 참가시키려고 했다. 광주 시민의 아픔이 각인된 공간에, 그 고통과 직결된 부대의 시가행진을 계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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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씨는 “광주 시민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할 순 없다”고 했다. “(광주 시민이 죽은) 옛 전남도청까지 행진하는 행사에 제11공수특전여단을 참가시키는 게 말이 되나.” 박 처장이 광주에 상처를 안긴 제11공수특전여단을 한국전쟁 기념 시가행진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여론과 다시 맞서려는 건 좋지 않다는 뜻이다.
보훈처는 야당과 여론의 반발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2013년에도 제11공수특전여단의 특공무술 시범을 포함한 한국전쟁 기념 시가행진을 광주에서 진행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2년간 중단했다가 올해 행사를 더 키워서 재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보훈처는 광주 지역 시가행진을 취소했다. 다른 시·도의 행진은 그대로 진행한다.
“1980년 몇몇 정치군인에 의해 11공수특전여단이 투입돼 (계엄군이란) 멍에를 안았지만, 이제 정부도 5·18(민주화운동)을 예우하고 있고, 11공수특전여단이 (광주·전남) 지역을 지키는 부대라 참여시키려고 했던 것인데, (이런 논란이 일어) 11공수특전여단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최정식 보훈처 홍보팀장은 말했다.
2013년 행사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 논란이 벌어진 것은 왜일까. 올해 행사는 언론 보도로 제11공수특전여단의 시가행진 참가가 더 크게 알려졌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엔 사회적 논란거리를 낳는 횟수가 잦아진 보훈처에 대한 주목도가 2013년보다 좀더 높아진 측면도 있다. 그 중심엔 정치권에서 ‘갈등 유발자’로 불리는 박승춘 처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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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성 장군 출신인 박 처장은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에서 군복을 벗어, 보수 정권에서 탄탄한 길을 걷는 인물이다. 그는 2004년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당시 무전 내용 등 기밀사항을 와 에 고의 유출한 혐의로 군에서 제대했다. 당시 그는 군 정보병과의 최고책임자인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이었다.
그는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했고, 2007년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다. 2011년 2월 이명박 정부에서 보훈처장이 된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신임을 얻으며 5년4개월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차관급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3년 넘게 같은 직을 유지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보훈처에서도 이례적인 경우다. 박 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에 박기석 보훈처장(1965~70년)이 5년7개월간 근무했을 뿐, 1980년 이후에 재직 기간 3년을 넘긴 보훈처장은 없었다. 지금 기세라면 박승춘 처장이 역대 최장기간 근무하는 보훈처장이 될 수 있다.
제19대 국회에서 박 처장의 이념 편향성 안보교육 문제를 집중 제기한 강기정 전 의원은 “현 정권 입맛에 맞는 일을 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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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처장은 2011년 8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경호실장이자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주요 인물인 고 안현태씨가 국립묘지에 안장되도록 심의 과정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보훈처는 대선이 열린 2012년에 야당의 정책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안보교육을 직장인·학생을 상대로 진행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다. 박 처장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직후인 2013년 1월 호국보훈안보단체연합회 신년교례회에서 “성과가 지대했다. 여러분들 뜻하신 바를 이뤘다. 제가 2년 동안 이념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선제보훈’ 정책을 추진하는 업무를 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박 처장이 취임한 이후 보훈처는 정부가 실시하는 장·차관급 기관 업무 평가에서 줄곧 ‘보통 등급’ 정도를 받았다. 지난해 종합평가에선 ‘보통 등급’을 받았지만, 주요 세부 항목(국정과제 수행과 규제 개혁)에선 최하 등급인 ‘미흡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보훈처 내부에선 박 처장이 조직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도 있다. 보훈처의 한 인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훈처 폐지가 거론되는 등 직원들이 위축되기도 했는데 박 처장이 온 뒤로 6·25 참전국과의 보훈외교와 나라사랑교육 확대 등으로 사업도 많아지고 예산도 늘었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나라사랑교육’(애국·보훈교육)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국민 300만 명을 상대로 진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야 3당, 또 해임촉구 결의안 제출했지만하지만 보훈처 관련 조직에서 고위 간부였던 한 인사는 “보훈처가 이념 갈등 해소를 위해 ‘나라사랑교육’을 할 수 있지만, 박 처장이 편향된 이념을 내세워 갈등을 야기하는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30년 넘게 군생활을 한 다른 인사는 “보훈처장을 오래 하는 것은 오너(대통령)의 신뢰 때문 아니겠는가. 박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지낸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박승춘 처장 등 주로 군 출신을 믿는 것 같다. 한편으론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외교정책 자문단 일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6월23일 ‘애국·호국·보훈’의 이름을 내세워 사회 갈등을 종종 유발하는 박 처장에 대한 해임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 제출은 2013년, 2015년에 이어 세 번째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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