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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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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투표 스타크래프트만큼 ‘꿀잼’

1인 미디어 <쥐픽쳐스> 운영하는 국범근씨의 제20대 총선 참여기… 정치인들, 제발 잘하자! 처음에 재밌던 게임도 금방 ‘망겜’된다
등록 2016-04-19 16:10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최고존엄 국범근 유일지도체제의 꿀잼 영상 제작소’. <font color="#C21A1A"></font>(G pictures)의 페이스북 페이지 소개말이다. 소개 그대로 국범근(19)씨 1인이 운영하는 는 ‘황진이 vs 신사임당’ 등 역사 속 인물들이 가상으로 등장하는 ‘한국 역사 인물 랩배틀’ 시리즈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정치·사회·문화 이슈를 골고루 다룬 ‘범근 뉴스’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개인 계정 페이스북 팔로어를 모으면 고정 독자만 11만여 명. 은 4월13일 제20대 총선 개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국범근씨와 처음 협업했다. 방송에서 미처 다 나누지 못한 그의 생애 첫 총선 참여기를 지면으로 전한다. _편집자</font>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던 4월 13일 저녁 6시,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한겨레21> 뉴스룸의 표정. 맨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국범근씨. 박승화 기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던 4월 13일 저녁 6시,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한겨레21> 뉴스룸의 표정. 맨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국범근씨. 박승화 기자

내 인생 첫 투표, 솔직히 재미없을 줄 알았다. 누가 이길 게 뻔한 게임이 뭐가 재미있나. 새누리당의 지지는 견고해 보였고, 야당은 분열돼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 전문가 의견, 내 주변의 자칭 ‘정잘알’(‘정치를 잘 알고 있는’의 줄임말) 친구들 모두 새누리당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냥 승리가 아니라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유례가 없는 압승을 거두게 되리라고 점쳤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새누리당이 200석을 돌파하고 그 우호세력을 규합해, 헌법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대로 개정한다는 전망이었다. 일본 자민당이 장기 집권한 것처럼 이번 선거를 계기로 새누리당이 사실상 영구 집권을 할 거라는 일종의 종말론까지 나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어차피 질 텐데 투표하느니 PC방 가겠다? </font></font>

새내기 유권자인 나에게 4·13 제20대 총선은 투표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보다는 좌절감과 패배감을 먼저 가르치는 선거가 될 것만 같았다. 나와 내 친구들이 아무리 열심히 참여해도 대세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컴퓨터게임을 할 때는 상대방의 우세가 확실하면 빨리 채팅창에 ‘GG’(게임 선수가 경기를 포기할 때 사용하는 용어)를 치고 나가는 게 현명한 방법으로 통한다. 게임 결과를 볼 것도 없이 차라리 일찌감치 포기해야 다음 게임을 위한 시간이라도 벌게 되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을 투표에 적용한다면, 어차피 질 싸움을, 어차피 질 진영의 일원으로 참여하느니 그 시간에 PC방에 가서 자기가 이길 가능성이 있는 게임을 하겠다던 어느 친구의 말이 마냥 헛소리만은 아니게 된다.

그래서일까, 에서 페이스북으로 총선 개표 라이브 방송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을 때도 내 기분은 사실 시큰둥했다. 솔직히 이번 선거를 라이브 방송까지 하면서 진지하게 논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어차피 새누리당이 이길 거 그냥 대충 떠들고 말 일이지.

그저 안수찬 편집장이 말아주는 ‘소맥’을 마시면서 엄숙한 분위기로 야당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내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릴 뿐이었다. 정치 얘기 하는 게 직업인 기자 아재(?)들 사이에서 괜히 어쭙잖게 몇 마디 꺼냈다가 공개적으로 탈탈 털리는 내 모습도 보였다. 아무튼 4월13일 오후 6시 전까지 내 기분은 매우 심란하고, 심란하고, 또 심란했다.

그런데 6시 땡 치고 방송 3사의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의 의석수가 과반 아래로 떨어지고, 참패할 줄만 알았던 야당이 의외의 선전을 거둔 게 아닌가!

놀랐다. 진짜 깜짝 놀랐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반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나와 함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기자들은 부랴부랴 급하게 라이브 방송을 준비했다. 새누리당이 185석을 가져갈 거라고 예상했던 대구 사람 안수찬 편집장님만 빼고, 모두가 한껏 고무된 상태로 급하게 움직였다. 나도 분주해졌다. 갑자기 궁금한 게 너무 많아져서 질문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출구조사 결과가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랑 왜 이렇게 다른 건가?” “박근혜는 바로 레임덕을 맞는 건가?”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압승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재인은 정계 은퇴를 하게 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타이핑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많았다. 역시 정치는 재밌는 거구나. 한껏 고조된 상태에서 술까지 들이켜고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내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나 ‘엘 클라시코’(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더비 경기) 중계를 볼 때처럼 신나게 떠들었다는 거다. 그게 가능했다. 그만큼 이번 선거는 ‘꿀잼’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새누리당은 ‘발리고’ 더민주당은 ‘뽀록 떴네’</font></font>
4월13일 저녁 <한겨레21>과 국범근씨가 협업한 제20대 총선 개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2부 ‘팔도 선거 배틀’이 진행 중이다. 왼쪽부터 국범근씨, 안수찬 편집장, 송호진 시사팀장, 서보미 기자, 하어영 기자, 김완 디지털팀장. 박승화 기자

4월13일 저녁 <한겨레21>과 국범근씨가 협업한 제20대 총선 개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2부 ‘팔도 선거 배틀’이 진행 중이다. 왼쪽부터 국범근씨, 안수찬 편집장, 송호진 시사팀장, 서보미 기자, 하어영 기자, 김완 디지털팀장. 박승화 기자

자정까지 이어진 라이브 방송 강행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번 선거의 의미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차분히’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도저히 들뜬 기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단순히 미운 놈들 안 보게 되어 고소하다는 감정이 아니었다. 현실 세계에서 결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모습을 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봤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항상 이기던 새누리당이 졌다.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원내 제1당 지위를 상실하는 참패를 당했다. ‘정치 알파고’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를 진두지휘했는데도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새누리당은 ‘발렸다’. 오세훈, 김문수, 안대희 등 ‘잠룡’으로 불리던 여권의 대권 주자들이 올킬 당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불사의 ‘피닉제’(이인제)도 마침내 낙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무성이 머리를 숙였다. 킹무성이 사과를 했다고! 에헤라디야~.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못 이긴다는 더불어민주당이 이겼다. 수도권을 비롯한 접전 지역을 더민주가 싹쓸이했다. 내 지역구인 강동갑도 더민주 진선미 의원이 당선됐다. 여당의 텃밭인 줄만 알았던 부산, 경남, 대구, 경북에서도 다수의 더민주 의원이 승리했다.

물론 언제나처럼 더민주는 선거를 앞두고 많은 ‘뻘짓’을 했기에 이 승리가 더민주만의 전리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여당의 삽질을 통한 반사이익, 즉 10대들의 전문용어로는 ‘뽀록 떴다’고 하는 상황일진대, 어쨌든 더민주는 귀한 승리를 얻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제발 잘 좀 하시라.

가장 놀라웠던 건 국민의당의 성적이다. 호남을 아예 다 먹어버렸다. 정당 득표율도 더민주에 앞선 2위를 기록해서 35석 이상의 의석을 가져갔다. 기껏해야 원내교섭 단체의 성사 여부가 국민의당의 최대 이슈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은 완전히 무너졌다. 새누리당도, 더민주도 단독 과반이 안 되는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이 되었다는 소식은 정말 놀라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고군분투 진보정당 성적은 ‘안습’ </font></font>

게임은 테란·저그·프로토스 세 종족의 예술과도 같은 밸런스가 압권이다. 어느 한 종족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상황에 따라, 유닛끼리의 상성에 따라 치밀한 수 싸움을 해야 이긴다. 그래서 재미있는 게임이 다. 국민의당의 약진은 어쩌면 우리 정치도 처럼 역동적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게 아닐까. 나는 국민의당이 제대로 된 정당으로서 기능할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덕분에 정치의 역동성만큼은 확실히 확인했다.

반면 원래부터 제3당이 되려고 고군분투하던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 군소 정당의 성적은 그야말로 ‘안습’이었다.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아직은 무리인 걸까.

내가 다니는 성공회대학교에는 녹색당 당원이 많다. 아주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이다. 특히 지난 선거운동 기간 그들이 보여준 열정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피켓을 들고 뛰어다니는 건 기본이다. 수업 시간에도 녹색당 얘기, 밥 먹을 때도 녹색당 얘기… 녹색당밖에 모르는 바보인가 싶을 정도로 그 사람들, 녹색당을 원내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진짜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심지어 MT 때도 녹색당 티셔츠를 입고 놀았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다. 그 대단한 열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의 정당득표율을 다 합쳐도 기독자유당에 안 된다. 그나마 가장 덩치가 큰 정의당조차 비례대표 6번 조성주 후보를 국회로 보내지 못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진보정당이 마주하고 있는 고약한 현실이다.

그래도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는 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 똑똑히 보았다. 선거 며칠 전 “도대체 변화라는 게 가능하기나 하냐”는 내 질문에 “가장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변화는 찾아온다”고 대답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옳았다.

가장 암울할 것만 같았던 2016년 4월13일, 내 인생의 첫 투표는 ‘드라마틱’하고 ‘다이내믹’했으며 그렇기에 ‘꿀잼’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껏 끓어오른 관심, 정치 혐오 될라</font></font>

나처럼 처음 투표를 한 다른 친구들도 하나같이 이번 선거가 ‘꿀잼’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선거날 하루 종일 PC방에서 시간을 보낼 거라고 말하던 친구놈은 나의 끈질긴 회유와 설득에 의해 결국 투표를 했는데,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앞으로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내가 얘랑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에 있었는데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못 채운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다.

나를 포함한 새내기 유권자들을 위해서라도, 정치권이 이제는 실질적인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새내기 유권자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 한껏 끓어오른 정치에 대한 관심은 더 큰 정치 혐오가 될 것이다. 처음엔 재미있던 게임도 업데이트를 잘못하면 유저들이 등을 돌려서 ‘망겜’(망한 게임)되기 십상이다. 제발 잘하자! 우리는 ‘꿀잼’ 정치를 계속 보고 싶다!

국범근 1인 미디어 (G pictures)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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