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군사교육을 갓 마친 신입 장군이 병사들과 전투에 나섰다. 장군은 이 산만 넘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지친 병사들을 독려했다. 드디어 산 정상에 올랐고, 장군은 병사들에게 외쳤다. ‘이 산이 아닌가보다~.’ 장군은 병사들을 이끌고 산을 내려와 다른 산을 올랐다. 다시 정상에 오른 장군의 나지막한 혼잣말이 모든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어, 그 산이 맞나보네.’
철 지난 유머이지만 ‘응팔 세대’( 세대)에겐 꽤 익숙한 이야기다. 웃자고 한 이야기이지만, 진짜 전쟁에서 장군이 이런 판단과 행동을 했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급격히 하락했을 것이다. 자칫 병사들은 전투에서 목숨도 잃을 수 있을 것이다. 장군은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아마 전체적인 지형을 파악하기보다 눈앞의 산만 바라보았거나, 주변 참모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 결정 계층의 이중 신호안철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을 탈당하고 지난 2월2일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를 연 지 한 달이 지났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국민의당은 장군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산, 새로운 정치의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현재까지 작성된 답안지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정례 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3개월간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서 보인 국민 여론의 기대와 지지는 급전직하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셋쨋주, 안 대표의 탈당에 대해 긍정 여론이 44%였다. 탈당 한 달 뒤인 지난 1월 둘쨋주 당시 창당이 예상되는 ‘안철수 신당’의 지지 여론은 19%였다.
그러나 정식 창당 뒤인 지난 2월 한 달 종합 정당지지도에서 국민의당은 10%로 주저앉았다. 국민의당이 중앙당 창당대회를 연 지 한 달 시점에 조사(3월2~3일)해 한국갤럽이 3월4일 발표한 정당지지도를 보면 국민의당은 9%로 더 떨어졌다. 특히 서울·인천·경기 거주자, 50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에서 지지를 철회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안 대표의 개인 지지율은 소폭 올라갔다. 지난해 12월 둘쨋주 조사에선 8%였지만 올해 2월 첫쨋주 조사에선 12%로 조금 증가했다. 특히 서울 및 광주·전라 지역 거주자, 30대와 50대, 블루칼라에서 지지율이 상승한 흐름을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서울 거주자, 50대, 블루칼라 등이 같은 기간 국민의당을 대거 이탈하면서도 안 대표 지지까지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이들 계층은 대선과 총선에서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역할을 해왔다. 정치·경제 이슈에 대한 찬반이 갈리면 이 계층에서 주로 접점이 형성된다.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시에 현실적 판단을 하는 계층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정치 깃발을 들고 나온 안 대표의 ‘비전’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실현해야 하는 국민의당의 ‘능력’에는 물음표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극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그럼 안 대표와 국민의당 가운데 누가 당기는 힘이 더 셀까. 안 대표가 국민의당 지지율 상승을 견인할까, 국민의당이 안 대표의 지지율을 하락시킬까. 현재까지 작성된 답안지를 들여다보면 안 대표와 국민의당 지지율이 모두 약보합세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서울 거주자와 50대 및 블루칼라가 안 대표의 행보와 국민의당 행보에서 생기는 ‘인지부조화’(신념과 실제로 보는 것 사이의 불일치나 비일관성이 있을 때 생기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할 수 있다. 안 대표는 양당 중심의 기득권 정치를 깨는 정치·정당 개혁을 내세우며 탈당과 창당에 나섰지만, 정작 국민의당은 호남 중심으로 흘러가는 등 안 대표가 표방하는 정치 개혁 방향과 다른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각 정당이 4월 총선에 내세울 후보를 결정하는 내부 경선이 끝나는 시점, 즉 총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지지 강도와 투표 경험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도·무당층을 지지층으로 다수 보유한 국민의당 지지율이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 어떤 정당에 대한 지지 의향과 실제 투표 행위의 간격은 생각보다 크다.
마지막으로, 지역과 이념 구도에서 ‘넛 크래커’(nut cracker·호두를 양쪽으로 눌러 까는 기계를 뜻함)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부산·울산·경남 거주자와 대구·경북 거주자가 안 대표에게 보내는 지지율과 인천·경기 거주자의 국민의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할 수 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이념적 양극화는 평소보다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최근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야권통합을 제안했다. 제안의 진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총선 정국에서 야권연대 등 야권 전체의 판을 주도하는 ‘큰형님’ 이미지 만들기의 일환으로도 보인다. 김종인 대표의 제안에 안 대표가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등 국민의당이 술렁이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은 어떻게 될까. 낙관적이진 않지만 안 대표와 국민의당이 현 상황을 극복할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선거구에 많은 후보를 내기보다는 가치와 철학이 맞는 후보만 내는 방법이다. 양보다는 질이다. 수도권과 중부권이 이에 해당하는 곳이다.
둘째,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힘으로 경쟁하는 방법이다. 안 대표의 정치 개혁 방향에 부합하면서 당선 가능성도 높은 새 인물을 수혈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지역에서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당 소속 현역 의원의 공천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다만 이 경우 새 정치, 정치 개혁이란 당의 이미지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후보와 더민주 후보가 경합하는 지역에서 국민의당 후보가 당선되기는 어렵지만 승패를 결정할 만큼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해당 지역의 국민의당 후보가 대승적으로 사퇴하는 방법이다. 어느 곳은 더민주, 또 어느 곳은 국민의당이 단일후보로 연대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조건 없이 빠져주는 것이다. 수도권 야권 성향의 유권자에게 지역구는 경쟁력을 좀더 갖춘 더민주 후보를 찍는 대신, 비례대표 국회의원 투표는 국민의당에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도는 조건 없는 자기희생과 헌신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조건 없는 사퇴가 답일 수도총선을 앞두고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연대와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국민 입장에서 ‘양당 중심을 넘어선 3당 체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3당 체제의 경쟁 환경은 국민 입장에서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 과점시장의 소비자보다는 다양한 경쟁이 가능한 시장의 소비자가 더 많은 선택권을 누릴 수 있는 이치와 비슷하다.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3당 체제의 토대를 마련하면서 동시에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막아야 한다는 야권 지지층의 위기감도 외면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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