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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증거는 대법관 마음 속에 있나?

대법원, 한명숙 전 총리 9억원 불법 정치자금 받은 혐의에 대해 유죄 확정 판결… 9억원 중 3억원만 유죄라고 판단한 대법관 5명은 “진술 왜곡의 위험성을 공판 절차에서 바로잡지 아니하고 그대로 방치해버린 것”이라며 다수의견 정면 비판
등록 2015-09-01 13:45 수정 2020-05-02 22:17
대법원은 지난 8월20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고, 한 전 총리는 8월24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대법원은 지난 8월20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고, 한 전 총리는 8월24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명숙(71) 전 총리가 8월24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날 오후 1시40분께 서울구치소 앞에 나타난 그는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한 전 총리는 “오늘 사법 정의가 이 땅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 장례식에 가기 위해 상복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의 오른손엔 성경이, 왼손엔 순결(무죄)을 상징하는 백합꽃이 들려 있었다.

대법원은 지난 8월20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다. 전직 총리가 실형을 사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대법원 판결 직후 한 전 총리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돈을 준 사람은 없고 돈을 받은 사람만 있는 날조된 사건이다. 역사는 2015년 8월20일을 결백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날로 기록할 것이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수표, 달러 등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듬해인 2010년,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때 불거진 일이다.

검찰에서 “정치자금을 건넸다”고 진술했던 한씨는 그러나, 1심 법정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고 번복한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유죄로 확정판결했지만 의견은 8(상고기각) 대 5(파기환송)로 갈렸다.

다수의견은 “한씨의 검찰 진술이 다 믿을 만하다”며 9억원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소수의견은 “한씨의 검찰 진술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가 있는” 3억원만 유죄, 나머지 6억원은 무죄라고 반박했다. <한겨레21>은 5년1개월간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쟁점을 꼼꼼히 되짚어봤다.

1. 검찰의 ‘표적수사’인가

한 전 총리는 2009년 11월 곽영욱(75) 전 대한통운 사장한테 인사 청탁 명목으로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는데, 당시 1심은 무죄가 거의 확실한 상태였다. 유일한 직접 증거가 곽씨의 진술인데 그는 법정에서 “5만달러를 (직접 준 게 아니라) 총리 공관 오찬 모임을 마치고 의자에 두고 나왔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에서는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했었다.

또 건강이 좋지 않은 곽씨를 검찰이 구속한 뒤 새벽까지 심야 조사를 벌이며 심리적·육체적으로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곽씨는 법정에서 “몸이 아파서 살려고 그랬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검찰이) 하라는 대로 하면 내보내준다고 해서 그냥 진술했다”고 말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생사의 기로에 섰다는 느낌을 받은 곽씨가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전 총리) 뇌물 공여 부분에 대해 검사에게 협조적인 진술을 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5만달러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고, 이 판결은 항소심과 대법원까지 유지됐다.

‘정치적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검찰은 ‘5만달러 사건’의 무죄가 선고되던 날(2010년 4월9일), ‘9억원 사건’을 반전의 카드로 꺼내들었다. 한 전 총리가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면서 건설업자 한씨로부터 9억원가량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당시 한 전 총리는 유력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였다. 우상호 당시 민주당 대변인은 “(검찰이) 마치 술에 취해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처럼 섬뜩하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제보가 들어왔고 공소시효 문제 때문에 신속히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커졌다. 한 전 총리는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 석패했고 검찰 수사는 힘을 얻었다. 2010년 7월 한 전 총리는 9억원 사건으로 또다시 법정에 섰다.

2. 정치자금을 준 사람이 없다

반전이 또 일어났다. 건설업자 한씨가 2010년 12월20일 법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검찰 진술을 뒤집고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존경과 자부심의 대상이 내 허위 진술로 서울시장 선거에 낙선하고 검찰 기소까지 당해 너무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한 짓에 대해 감당이 안 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사실 몇 번이고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다. 지금 (법정) 증언하는 것은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바로잡아가는 것이다.”(한만호 1심 법정 진술)

한씨는 한신건영을 운영하면서 분양대금을 빼돌린 혐의로 2008년 5월 구속돼 징역 3년형을 받고 통영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2010년 3월31일 검찰이 느닷없이 그를 서울구치소로 이감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건넸느냐는 추궁에 한씨는 처음에 부인했다.

하지만 “수사에 협조하면 가석방 등의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한신건영 관계자가 회유하자 ‘9억원 사건’을 진술했다. ①2007년 3월31일~4월 3억원(현금 1억5천만원, 수표 1억원, 5만달러) ②2007년 4월30일~5월 3억원(현금 1억3천만원, 17만4천달러) ③2007년 8월29일~9월 3억원(현금 2억원, 10만3500달러) 등 모두 9억여원을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 한씨가 직접 한 전 총리에게 전화를 건 뒤 여행용 가방에 든 돈을 그의 아파트 앞 대로에서 건네거나(1차) 아파트 현관에 두고 왔다(2·3차)고 구체적인 전달 방법도 밝혔다.

그러나 한씨의 휴대전화를 분석해보니 한 전 총리의 휴대전화 번호가 입력된 시점은 ‘2007년 8월21일 오전 7시2분’으로 확인됐다. 한 전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돈을 건넸다는 때(2007년 3월과 4월)에 한씨 휴대전화에는 한 전 총리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검찰 진술에 대해 “단추 하나 가지고 양복도 만들고 바바리도 만들고 코트도 만들었다”고 표현하며 허위·왜곡·과장이라고 고백했다. “2007년에 세 번에 걸쳐 현금, 수표 및 달러로 9억원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1차 3억원은 (한 전 총리의 여비서인) 김문숙(55)씨에게 빌려줬고 2·3차로 조성한 돈 중 현금 일부는 내가 사용했고 나머지는 공사 수주와 관련한 로비자금으로 전달했다.”

3. 동생 전세자금 1억원과 비서가 돌려준 2억원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한씨의 검찰 진술은 법정에서 번복됐지만 검찰은 “객관적 자료”를 내밀었다. 첫째, 1차 정치자금에 포함된 1억원짜리 수표가 2009년 2월 한 전 총리 여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사용된 증거가 나왔다. 둘째, 2008년 2월 한 전 총리가 입원한 한씨를 병문안한 다음날 비서 김문숙씨가 2억원을 반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표 1억원’에 대해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은 비서 김씨에게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2004년 4월부터 동년배인 김씨와 가깝게 지냈는데 2009년 2월 아파트 이삿날이 맞지 않아 만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정기예금을 중도 해약해야 할 상황이라고 김씨에게 털어놓았다고 했다. 김씨가 빌려줄 수 있는 돈(수표 1억원)이 있다고 했고 3500만원짜리, 1500만원짜리 수표 2장을 주고 수표 1억원을 받아 전세금을 냈다. 다음달 정기예금을 더 찾은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은 2천만원짜리, 3천만원짜리 수표 2장으로 나머지 5천만원도 갚았다. 수표 5장은 모두 법정 증거로 제출됐다.

한씨에게 반환한 2억원도 비서 김씨가 빌린 돈이라고 했다. 한신건영이 1차 부도가 나자 한만호씨는 2008년 2월27일 병원에 입원했다. 이날 한 전 총리가 병문안을 왔고 다음날(2월28일) 비서 김씨가 한씨에게 연락해 “당장 급한 금액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날 김씨가 한씨의 기사에게 현금 2억원을 건넸고 한씨와 한 전 총리가 30초간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비서 김씨는 심부름꾼”이라며 “2억원 반환 주체는 한 전 총리”라고 주장했다.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억원 수표의 경우 1심은 “한 전 총리 여동생이 사용했다는 사정만으로 이 수표를 한 전 총리가 한씨에게 받았다고 곧바로 추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여동생에게 1억원 수표를 줄 사람은 한 전 총리 외에 다른 사람은 없어 보인다”고 뒤집었다. 2억원 반환도 1심은 “병문안 전후로 통화했다는 사실만으로 2억원의 반환 주체가 한 전 총리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전화 통화는 2억원의 반환 주체가 한 전 총리임을 추단할 수 있는 강력한 정황증거”라고 결론 냈다. 1심은 전부 ‘무죄’, 항소심은 전부 ‘유죄’로 엇갈렸다. 2013년 9월 최종심이 시작됐다.

4. 유죄인가, 무죄인가

‘9억원 사건’은 대법원 2부가 맡았다. 대법관 4명이 20개월간 사건을 심리했는데 유죄와 무죄 의견으로 엇갈렸다. 지난 6월 사건은 대법관 전원(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넘겨졌다. 8월20일 최종 결론은 8(상고기각) 대 5(파기환송)로 갈렸다. 양승태 대법원장 등 8명(다수의견)은 객관적 자료와 정황 사실이 드러난 1차 정치자금(3억원)이 유죄라면 2차, 3차 자금도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1차 자금과 관련한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면 같은 방식으로 조성·지급한 나머지 6억원도 한 전 총리에게 갔다는 것이 상식에 맞는다.”

반면 대법관 5명(소수의견)은 2차, 3차 정치자금 6억원은 무죄라고 맞섰다. “의심스러운 대목이 아주 없지 않지만 1억원 수표를 한 전 총리 여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기에 1차 정치자금 수수는 인정된다. 하지만 2차, 3차 정치자금은 금융자료 등 객관적 물증이 없는 상황인데도 한씨의 검찰 진술을 다수의견과 항소심이 신뢰해버렸다.” 특히 소수의견은 “이로써 다수의견이 수사 과정에서의 진술 왜곡의 위험성을 공판 절차에서 바로잡지 아니하고 그대로 방치해버린 것”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2009년부터 6년간 한 전 총리를 법정에 세웠던 ‘5만달러 사건’과 ‘9억원 사건’은 닮은꼴이다. 유일한 직접증거가 “한 전 총리에게 직접 돈을 건넸다”는 공여자의 검찰 진술인데 둘 다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뒤집어 버렸다. “(총리 공관) 의자에 놓고 나왔다”거나(곽영욱) “돈을 건넨 적이 없다”(한만호)고 법정에서 말을 바꾼 것이다. 한 전 총리가 직접 ‘검은돈’을 받았다는 유일한 직접증거가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결론은 ‘5만달러 사건’은 무죄, ‘9억원 사건’은 유죄로 엇갈렸다. 정황증거인 ‘한 전 총리 여동생의 1억원 수표 사용’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과거 대법원 판례를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1991년 ㄱ씨는 수표를 훔친 혐의로 법정에 섰다. ㄱ씨는 노름을 하다가 도난수표를 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1심과 항소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ㄱ씨는 전과 7범의 상습 절도범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하라며 판결했다. “ㄱ씨가 수표를 직접 절취한 것이 아닌가 강한 의심이 들지만 장물인 수표를 소지했다는 정황만으로는 절도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ㄱ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해도 수표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받았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무고한 사람은 절대 처벌받지 않도록 한다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을 대법원이 충실히 따른 판례다. 한 전 총리의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런 기본 원칙을 충실히 이행한 것일까.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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