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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면 불법천지 캐나다 선거

1998년 위니펙시 시장 선거운동 참가기… 선거일, 차가 없어 못 오는 지지자에겐 차를, 아이 돌봐야 하는 지지자에겐 도우미를 보내 투표 독려
등록 2015-04-02 16:41 수정 2020-05-03 04:27

“내가 투표소에서 선거인명부를 볼 수 있다고?”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응, 선거운동원이라고 얘기하면 돼. 선거인명부를 보고 누가 투표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 30분마다 전화할 테니까 투표자를 불러줘.” 룸메이트는 또박또박, 천천히 다시 말했다.

투표소에서 선거인명부를 확인해서…

1998년 10월 나는 선거운동원으로 캐나다 지방선거를 경험했다. 내가 지지한 후보자는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시 시장으로 출마한 글렌 머레이(당시 41살)였다. 그는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탓에 보수층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열성 선거운동원이던 룸메이트는 “일손이 부족하다”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투표권도 없는 외국인 유학생이었지만 별다른 제약 없이 나는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선거운동원이 되기 위해 어딘가에 신고하거나 등록하는 일은 필요 없었다. 스스로 결심하면 누구나 제약 없이 선거운동원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전화 걸기였다. 위니펙시 전화번호부를 펼쳐놓고 개별 유권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하는 시장 후보를 무작정물었다. “머레이”라고 밝히면 감사의 뜻을 전하고 그를 ‘머레이 지지자 명단’에 올렸다. 다른 후보자의 이름을 대면 머레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의견을 바꾸는 유권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화 선거운동으로 작성한 ‘머레이 지지자 명단’은 선거일에 빛을 발했다.

10월28일 선거하는 날, 아침 일찍 투표소로 갔다. 투표가 막 시작됐을 때 나는 선거인명부를 확인하는 선거관리자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선거운동원입니다. 옆에 서서 선거인명부를 봐도 될까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선거관리자가 답했다. “투표에 방해되지 않도록 신경 써줘요.”

선거운동을 일절 금지한 한국과 달리 캐나다에서는 선거일까지도 선거운동이 치열하다. 2008년 12월 장 샤레 캐나다 퀘벡주 자유당 대표(왼쪽)가 투표소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REUTERS.

선거운동을 일절 금지한 한국과 달리 캐나다에서는 선거일까지도 선거운동이 치열하다. 2008년 12월 장 샤레 캐나다 퀘벡주 자유당 대표(왼쪽)가 투표소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REUTERS.

이른 시간인데도 유권자가 많았다. 투표일이 공휴일이 아니라서 출근 전에 투표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선거인명부에서 빠르게 지워지는 유권자의 이름과 주소를 나는 어깨너머로 보며 기록했다. 약속대로 룸메이트가 전화했다. 투표한 이들을 불러주자 그는 선거사무실에서 ‘머레이 지지자 명단’과 비교했다. 아직 투표하지 않은 머레이 지지자를 찾아서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전화를 걸어 몇 마디 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지지자가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투표할 수 없다고 하면 아이돌보미를 보냈다. 몸이 불편한데 이동차량이 없어서 투표하러 갈 수 없다고 하면 운전자와 자동차를 보냈다. 아이돌보미나 운전자 모두 나와 같은 선거운동원이었다. 이것이 지지자의 투표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마지막 선거운동’이었다.

오후가 되자 상대 후보자의 선거운동원도 나타났다. “늦었군요.” 선거관리자가 한마디 했다. “젊은 운동원이 우리 쪽은 많지 않아서요.” 40대로 보이는 그는 20대인 나를 보며 말했다. “투표한 유권자를 공유해줄 수 있나요?”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는 상황이라 그는 선거인명부를 들쳐보며 투표자를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그때 선거관리자가 나섰다. “몇 시간째 앉지도 못하고 일한 친구한테 참 쉽게 가로채네요.” 그는 얼굴이 벌게졌다.

북미 지역 최초 동성애자 시장의 탄생

투표가 끝나고 나는 룸메이트와 함께 시내의 한 술집으로 향했다. 선거운동원들은 술 마시고 춤추며 투표 결과를 흥겹게 기다렸다. 밤 12시가 넘어 TV 화면이 켜졌다. ‘머레이 득표율 50.5%’. 1위였다. 환호성이 터졌다. 2위는 45%, 초박빙 승승부였다. 선거일의 마지막 선거운동이 승패를 가른 것이다. 반면 한국 선거법은 선거일에는 선거운동을 일절 금지한다. 북미 지역 최초의 동성애자 시장으로 기록된 머레이는 6년간 위니펙시 시장을 지내다 2010년 온타리오 주의회로 진출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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