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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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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절차만 잘 밟으면 됩니다

근로계약 해지 가이드라인 만들어 해고 정당성 부여하려는 정부
등록 2015-01-07 15:29 수정 2020-05-03 04:27
대림자동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이 난 지난해 12월24일 서울 대법원 앞에서 남문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마이크 든 이), 대림자동차 해고자 이경수씨(오른쪽 세번째) 등이 복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제공

대림자동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이 난 지난해 12월24일 서울 대법원 앞에서 남문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마이크 든 이), 대림자동차 해고자 이경수씨(오른쪽 세번째) 등이 복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제공

악마는 디테일(세부 사항)에 숨겨져 있다. 근로기준법 제24조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정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는 노사 양쪽에 중요한 문제였다. 한쪽에서는 노동자를 잘라낼 수 있는 ‘칼날’이었고,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는 ‘동아줄’이었다. 쌍용자동차, 콜텍 등 수많은 기업의 노사가 디테일을 두고 싸웠다.

악마가 숨은 ‘디테일’ 만들겠다는 정부

법원의 판결은 이렇게 모아졌다. “구체적 사건에서 경영상 이유에 의한 당해 해고가 각 요건을 모두 갖추어 정당한지 여부는 각 요건을 구성하는 개별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2년 7월9일 선고 판결 등 참조) 정리해고가 합법인지 여부는 디테일에 따라 다르게 판정됐고, 때로는 노동자가 이기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해 말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직접 ‘디테일’을 만들겠다고 했다. 합리적 기준에 의한 평가, 직무·전환 배치 등의 해고회피 노력, 공정한 절차 등 근로계약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판결이 엇갈리는 등 분쟁이 매해 늘고 있고, 극단적인 노사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정부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현재 법조문이 추상적이어서 기준이나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것은 맞는 방향이다”라고 전제한 뒤, “정부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정부·사용자는 판례보다 해고에 유연한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노동계도 반대로 이전 판례와 더 강화된 해고 요건을 얻으려면 입법을 통해 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해고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가 중요한 이슈임을 일깨워준 판결이 지난해 12월24일 대법원에서 나왔다. 경영 실적이 악화된 대림자동차는 2009년 11월30일 노동자들을 해고했고, 이에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투쟁에 들어갔다. 1심에서는 졌지만 2심에서 이긴 뒤 5년 만에 대법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고, 피고가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 및 성실한 협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해고 대상자의 선정 기준이 합리적이거나 공정하다고 볼 수 없어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인사고과가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 정해지고, 점수가 임의로 수정될 수 있어 해고 대상자의 선정이 합리적이거나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 경영상의 긴박성이나 해고 회피 노력, 성실 협의 등 나머지 회사 쪽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졌다.

이경수 금속노조 대림자동차해고자복직투쟁위 위원장은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아쉬움을 표했다. “정리해고의 4가지 요건 가운데 법원이 일부만을 받아줬다. 결국 정리해고를 하려면 회사가 절차를 잘 밟으라고 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결과를 얻었다. 힘들게 싸웠지만 이번 판결을 토대로 노동자들이 얻은 것은 없다.” 반대로 기업이 저성과자를 가려내는 절차를 명확히 한다면 해고의 요건을 모두 채우는 셈이다.

저성과자 해고 요건 완화로 이어질까 걱정

노동계도 경영상의 해고 요건 완화와 더불어 개별 해고 요건 완화로 이어질까 우려한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노동자의 업무는 계량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이 상당수 개입되는 것이 현실이다. 저성과자 개별 해고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은 회사 쪽이 다양한 압력을 행사해 노동자를 그만두게 하는 불법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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