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인사에 어울리는 수식어는 뭘까? 포털 네이버 검색창에 ‘박근혜 인사’를 입력하면, 자동완성 기능으로 ‘실패, 낙마, 참사’ 등의 단어가 따라붙는다. 이젠 어떤 참사가 벌어져 낙마를 한다 해도, 그 수많은 실패 목록에 한 줄 덧붙일 뿐 더 놀랄 것도 없다.
논란 끝에 자리에서 물러난 이들만 꼽아도 줄을 잇는다. 막말성 글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다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물러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부동산 투기 등 의혹으로 사퇴한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 무기 중개업체 근무 등의 전력 탓에 낙마한 김병관 전 국방장관 후보자, 이중국적과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련 경력으로 논란이 됐던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성접대 의혹 속에 사퇴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국외 비자금 계좌를 이용한 탈세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진 사퇴한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주식 백지신탁 규정을 잘 몰랐다며 물러난 황철주 전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등이 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처럼 자리는 지키고 있을지언정 끊임없이 입길에 오르는 인물도 있다.
집권하더니 자기 사람부터 챙긴다?
서청원(70)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30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 경기 화성갑 지역구 후보로 공천받은 것은, 그나마 행정부에 제한됐던 ‘인사 참사’ 무대가 여당과 의회로도 넓혀졌다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검증 실패’라는 무능에만 초점이 모아졌던 비판이, ‘집권하더니 자기 사람부터 챙긴다’는 사심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국가 운영을 지켜보면서 공(公)을 사(私)에 우선하는 게 몸에 뱄다’는 평가를 받아온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치명적일 수 있다.
서 전 대표는 10월 재보선 지역이 확정되기 전부터 충남 서산·태안 또는 충청 출신이 많이 사는 인천 서·강화을 지역구를 점찍어 저울질을 했다. 그는 충남 천안 출신으로, 서울 동작구에서 11·13·14·15·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대법원 판결이 9월 말까지 나오지 않아 10월 재보선에선 제외됐다. 서 전 대표는 경기 화성갑으로 방향을 틀었다. 8월 말 고희선 의원이 타계하면서 재보선이 확정된 곳이다.
지역구는 나중에 결정됐을지언정, 어차피 10월 재보선을 노리고 있었기에 일정표엔 큰 차질이 없어 보였다. 다만 8월26일로 예정됐던 출판기념회를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무기한 연기시켰다. 그의 평전은 출판기념회 없이 9월15일 국회에 뿌려졌다. 이튿날 그는 비공개로 공천을 신청했다. 지역 연고를 묻는 기자들에게 서 전 대표 쪽은 “외가가 옛날에 화성군이었고, 그래서 6·25 때 1년 정도 피란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도 멋쩍은지 “요즘 같은 글로벌 디지털 시대에 화성에서 태어나서 화성에서 학교를 나와야 화성 사람인가”라고 덧붙였다.
그의 평전 는 제목이 더 화제가 됐다. 2010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구속 수감 586일 만에 가석방돼 의정부교도소를 나오면서 했던 말이다. 당시 그는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든든했다.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선에서 돕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내용이어서, ‘우정’을 약속하는 주체는 서 전 대표 본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정은 일방적이지 않다. 상호 공유하는 감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변치 않는 우정’을 약속받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기도 한 셈이다. 그 말을 지금 다시 꺼내든 건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친박연대’의 추억당시 그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을 돕는 과정에서 옥고를 치른 상황이었다. ‘이명박 대 박근혜’로 치른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은 양쪽 진영이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한 대결이었다. 결과도 박빙이었다. 후폭풍도 클 수밖에 없었다. 승자인 친이명박계가 주도한 이듬해 총선 공천에는 ‘학살’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다수의 친박근혜계 정치인들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울분을 토했고, “살아서 돌아와달라”며 무소속 출마를 독려했다. 이들은 한나라당을 집단 탈당했고, 방치된 한 정당을 ‘인수’해 이름을 ‘친박연대’로 바꿨다. 급기야 친박연대는 총선에서 정당투표 지지율 3위로 비례대표 8석과 지역구 6석 등 14석을 얻는 대성공을 거뒀다. 미래희망연대로 이름을 바꾼 친박연대는 나중에 한나라당과 합당하면서 박 대통령에겐 원내 및 당내 세력 기반을 제공하기도 했다.
서청원 전 대표는 이 모든 과정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경선 때는 다소 늦게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음에도, 역동적으로 전국을 다니며 침체에 빠지려는 캠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후보의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관련 의혹을 몸소 집중 제기하기도 했다. 친박연대를 주도한 것도 그였고, 공동대표도 맡았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정당을 만들어 운영할 돈이 없어, 비례대표 공천 대가로 돈을 받았다. 2009년 5월 대법원은 서 전 대표(비례 2번, 징역 1년6개월)를 비롯해, 31살의 나이에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비례 1번으로 당선된 양정례 전 의원(공천헌금 15억1천만원,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과 그의 어머니 김순애 건풍건설 대표(징역 1년), 그리고 비례 3번으로 당선된 김노식 전 의원(공천헌금 17억원, 징역 1년) 등의 형을 확정했다. 서 전 대표는 2002년 대선 때 선대위원장을 맡아 정치자금법 위반, 이른바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으로 형사처벌이 확정(징역 1년6개월·집행유예 3년·추징금 12억원, 2004년)된 이력이 있어, ‘재범’이란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다만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친박연대의 정치자금 수입용 예금계좌를 통해 금품을 수수했고, 친박연대가 이를 정당의 운영자금과 선거비용으로 사용했을 뿐 피고인 서청원이 사적으로 취득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청와대 “서청원 공천, 우리와 무관한 일”새누리당의 10월 재보선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홍문종 위원장(당 사무총장)은 “화성시가 경기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낙후돼 있는데, 서청원 같은 유력 정치인이 선출돼 지역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점차 성숙되고 있다. 서 후보가 민심에 가장 근접한 후보이자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라고 판단했다”며 공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김성태·박민식·이장우·조해진 의원은 10월1일 “성범죄, 뇌물, 불법 정치자금 수수, 경선 부정행위 등 4대 범죄로 형이 확정된 자는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국민과 약속한 엄정한 원칙”이라며 서 전 대표의 공천에 반발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며 진두지휘했던 지난해 총선에서 제시된 공천 원칙이 무너졌다는 얘기다.
공천 확정 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다. 정치 개입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입은 각종 ‘은혜’에 대해 약속했던 ‘우정’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최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의 새 대표상임의장으로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을 선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총선·대선의 큰 화두였던 ‘정치 쇄신’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한 후퇴다. 홍 전 의원은 지난해 9월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당했다. 당내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까지 맡았던 홍 전 의원은 탈당하면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올해 2월 열린 공판에선 “공소사실을 모두 시인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입장을 번복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앞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그동안 국민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갚으며 살아가려 한다.” 홍 전 의원은 서 전 대표와 더불어 친박연대를 이끌었던 다른 1명의 공동대표였다. 비리 전력에도 불구하고 서 전 대표와 홍 전 의원 두 사람을 재등장시킨 건 박 대통령의 ‘무리한 보은’이란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원칙 없이 강행한 서 전 대표의 공천은 여권 내 역학 구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정권 초기 청와대에 잔뜩 힘이 기울어 있는 상황에서, 미약하나마 여권의 차기 구도는 지난 4월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 의원은 9월25일 “기회가 된다면 당권에도 도전해볼 것”이라고 했고, 27일에는 “(대권 도전) 생각이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김 의원의 관계는 물음표다. 물론 김무성 의원도 친박이다. 김 의원은 2007년 경선 캠프에서 좌장 역할을 맡았고, ‘친박 학살’을 딛고 ‘친박 무소속연대’로 출마해 당선된 바 있다. 그러나 2인자 등극을 용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과 마찰을 빚으며 오히려 친이계의 지원 속에 원내대표에 당선되는 등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대선에선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겨 다시 신임하게 됐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오롯이 회복되진 않았다는 얘기가 지배적이다.
‘김무성 견제용’ 청와대 포석이란 분석도이런 점에서 서 전 대표의 공천은 김 의원을 견제하려는 청와대의 포석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두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운 선후배 사이다. 선배인 서 전 대표라면 충분히 견제할 수 있어 보인다. 다만 서 전 대표가 이겨야만 한다. 만약 지면 서 전 대표뿐 아니라, ‘보은 공천’을 무리하게 강행한 청와대 리더십에도 타격이 온다. 역으로 김무성 의원은 힘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서 전 대표에 맞서 ‘손학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귀국한 손학규 전 대표는 경기지사 경력을 정치 인생의 주요 기반으로 삼는다. 상대적으로 서 전 대표보다 화성이 덜 낯설다.
박 대통령은 2011년 12월 서 전 대표의 친목모임인 청산회가 서울에서 연 ‘송년의 밤’ 행사에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라는 격려 인사를 전한 바 있다. 이번 공천이 의리는 지킨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늘 강조해온 ‘원칙과 신뢰’는 지킨 것일까? 승리의 약속도 지키게 될까?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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