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영화 18편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인정해주신다면 대한민국 성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김기덕 감독이 지난 6월5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 제출한 의견서의 마지막은 이런 호소로 갈음된다. 앞서 그의 영화 는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김 감독은 영등위 지적을 바탕으로 원본에서 1분가량을 삭제한 뒤 재심의를 요청한다. 7월15일, 영등위는 에 대해 다시 한번 제한상영가 등급을 결정했다. 결국 김 감독은 영화 개봉 찬반시사회를 개최해, 30% 이상이 반대하면 개봉하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치기에 이른다. 7월26일 영화진흥위원회 시사실에서 열린 개봉 찬반 시사회 투표에는 기자·평론가 등 107명이 참여했으며, 이 가운데 87%인 93명이 공개해도 문제없다는 의견을 표했다. 김 감독은 첫 번째 제출본에서 2분가량을 삭제해 세 번째 심의를 신청했다.
최근 영화 상영등급분류제도에 대한 공정성·형평성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영화 상영등급은 보통 5~10명으로 구성되는 영등위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가 결정한다. 이 결정에 불복해 등급 재분류 신청을 할 경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의 추천을 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위촉하는 9명의 영등위 위원이 등급을 결정하게 된다.
김 감독이 그토록 제한상영가 등급을 피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으면 사실상 국내 개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법률’(이하 영비법)에 따르면, 제한상영관 외의 시설이나 장소에서 상영이 금지된다.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는 성인들이 볼 수 없는 영화는 아니다. 처벌 대상이 되는 음란물과는 구분되며, 제한상영관에서 볼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현재 제한상영관은 단 한 곳도 없다. 결국 영등위 결정에 따라 성인이 볼 수 있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구분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상영등급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결정됐을까? 은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이 영등위로부터 제출받은 상영등급분류 회의록을 단독 입수했다.
4:2 혹은 3:2. 다수결에 따라 제한상영가 등급이 결정됐지만, 위원들 사이에도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컸다. 특히 일부 장면 삭제 뒤 이뤄진 재심의 과정에서, 본심인 소위원회가 열리기 전 작품을 사전 검토한 전문위원 3명은 만장일치로 에 대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의견을 제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9월 영등위는 등급분류 심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절차 경량화’ 제도를 도입했다. 영화 제작사가 ‘전체 관람가’나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희망하고, 전문위원들의 평가도 이와 동일한 경우 등급 분류 절차를 간소화했다. 소위원회에서 영화를 따로 평가하지 않고 전문위원 의견에 동의하는 방식이다. 김기덕필름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희망했고, 전문위원들도 같은 의견이었으므로 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7월15일 열린 소위원회에서는 를 다시 평가했다. 평소 관행에 비추어 이례적인 일이었다. 안치완 영등위 정책홍보부장은 “소위원회 참석위원 과반수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절차 경량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이 있다”며 “이에 따라 소위원회가 제한상영가 등급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는 위원 7명 중 5명이 참석했다. 제한상영가 등급 의견을 낸 위원은 3명, 청소년 관람불가 의견을 낸 위원은 2명이었다(자세한 내부 논의 내용은 표 참조).
에 대한 첫 번째 등급분류 결정은 6월1일에 이루어졌다. 회의에 참석한 위원 6명 가운데 4명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결정했고, 2명만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위원들은 주제·선정성·폭력성·공포·약물·대사·모방 위험 7가지 항목에 대해 등급을 매기고 의견을 제시한다. 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주요 요인은 ‘선정성’이었다. 특히 아들과 엄마의 근친상간 표현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반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결정한 위원 2명은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성인의 관람을 제한할 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1차 영등위 결정에 대해 김기덕 감독은 이렇게 항변했다. “엄마와 아들의 성관계가 아니라 결국 엄마와 아버지의 성관계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하고 연출을 했다. 물리적으로 아들의 몸을 빌리니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 드라마를 보면 그 의미가 확실히 다르며,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이고 연출자로서는 불가피한 표현이었다.”
7월15일 또다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자, 김 감독은 보도자료를 통해 고통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두 번의 제한상영가로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고, 밤새 살을 자르 듯 필름을 잘라 다시 재심의를 준비한다.”
한국이 에 대한 논란으로 시끄러울 무렵, 일본 도쿄에서는 라는 낯선 제목의 한국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중고생 관람도 가능했다. 김선·김곡 감독이 연출한 (이하 )였다. 은 영등위로부터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당시 박근혜 의원의 얼굴을 한 마네킹, 쥐 얼굴을 붙인 사람 등을 등장시켜 정치권과 현실을 풍자한 영화다. 유승희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심의 관련 문서를 보면 대부분의 위원들은 ‘특정 정치인 인권 비하 및 경찰 공권력에 대한 풍자 이미지가 매우 크므로 국민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거나 ‘인권과 윤리에 어긋나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 의견을 내놓았다.
김선 감독은 서울행정법원에 에 대한 제한상영가 등급분류 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한다. 지난 5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이 사건 영화는 제한상영가 기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일반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할 수 없게 한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의 마스코트인 포돌이를 주인공으로 해 현실정치와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려 했을 뿐, 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정하거나 반인간·반사회적 행위를 미화·조장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성인으로 하여금 이 영화를 관람하게 하고, 자유로운 비판에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결에 불복해 최근 영등위도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이유서를 통해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다”며 “의 경우 인간의 보편적 존엄, 선량한 풍속, 국민 정서를 해할 우려가 있어 제한상영가 판정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감독의 법률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할 예정”이라며 “더 나아가 행정기구의 영화 등급 분류는 일종의 검열이 될 수 있으므로, 민간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제한상영가 등급’이 규정된 영비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규정하지 않아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영비법이 개정되면서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 기준은 좀더 구체화됐다.
법정 싸움이 끝날 때까지 의 국내 개봉은 불가능하다. 이 상영되고 있는 일본은 영화업계가 자율적으로 구성한 기구인 ‘영화윤리위원회’가 등급 분류를 하고 있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노르웨이·핀란드·오스트리아·아일랜드 등에는 성인을 대상으로 상영을 제한하는 등급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프랑스·싱가포르 등에는 상영을 금지하거나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한 등급이 있다.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영화 등급 분류 기준엔 차이가 있다. 2007년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의 경우, 프랑스에선 16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었다.
영등위 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상영등급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영등위 관계자는 “재심의 신청이 들어올 경우 소수 위원들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판단을 구하는 보완책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font size="3">“불특정 다수에게 묻는 보완책은 어떤가”</font>
한국 영화 등급분류제도는 그동안 두 번의 전환기가 있었다. 헌재는 1996년 영화법의 사전심의제도, 2001년 영화진흥법의 등급분류보류제도에 대해 ‘검열’에 해당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영화계에선 제한상영가 등급 기준이 여전히 모호해 ‘자기 검열’을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문제일지라도, 영화 등급분류제도의 합리적 운영 방식에 대한 고민이 또다시 시작돼야 하는 이유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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