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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소설’은 현실화될까

사민주의 노선 채택 예정인 진보정의당과 ‘진보적 자유주의’ 들고나온 안철수 세력의
연대 가능성… ‘한계’ 진보정의당과 ‘세력화’ 안 세력의 현실 맞물려 있지만 “아직 시기상조”
등록 2013-06-26 15:06 수정 2020-05-03 04:27
‘진보적 자유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내건 안철수 세력과 ‘사민주의’를 채택할 예정인 진보정의당의 연대론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6월19일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 심포지엄에서 안철수(오른쪽)·송호창(가운데) 의원이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와 인사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우

‘진보적 자유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내건 안철수 세력과 ‘사민주의’를 채택할 예정인 진보정의당의 연대론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6월19일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 심포지엄에서 안철수(오른쪽)·송호창(가운데) 의원이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와 인사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우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요즘 정치 면에서 노벨문학상을 겨냥한 게 아닌가싶은 기사들을 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치권에서 논의를 제공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19일 안철수 의원의 정책연구소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심포지엄 축사에서다. 안철수 세력과 진보정의당의 연대론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정당들의 ‘정치적 좌표’가 분명하지 않은 현실을 얘기한 것이다.

<font size="3">‘자유’는 보편적 민주주의의 개념</font>

이날 안 의원의 정치적 좌표로 제시된 ‘진보적 자유주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치소설’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최장집 내일 이사장이 ‘대안 정당의 정치 이념’으로 제시한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해, 토론자들은 현재의 유럽식 사민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진보정의당은 7월21일 당대회에서 사민주의 노선을 채택할 예정이다. 최 이사장은 신당의 이념적위치를 ‘center left’(중도 좌파)라고 밝혔다. 진보정의당은 ‘진보 블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결은 다르지만, 양쪽 모두 ‘유럽식’을 많이 거론하고 있다.

안 의원이 내놓은 ‘진보적 자유주의’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상자기사 참조). 그러나 현재 추진 중인 신당의 정치 이념으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최 이사장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자유민주주의’나 ‘경제적 자유주의’ 개념이 아니라, 보편적 민주주의 가치로서의 자유 개념에 기반을 둔 것이다. ‘진보적’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시장근본주의 원리와 그것이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결과(양극화 심화)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치 이념으로서 자유주의와 경제 운영 원리로서의 자유시장주의는 서로 다른 원리와 가치이며, 진보적 자유주의는 결국 민주주의 심화와 경제민주화의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치 이념이라는 것이다.

<font size="3">미국 민주당이냐 독일 기민당이냐</font>

그는 새로운 경제 질서에 대해선 “성장과 고용 확대를 도모하고, 노동시장 양극화 완화를 목표로 하는 시장체제”라고 밝혔다. 최 이사장 스스로 밝히듯 이는 “김대중 정부 출범 시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모토”와 다르지 않다. 그는 “외환위기로 인해 이런 대안적 문제의식이 실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경제 운영과 성장이 사회 양극화와 사회 해체를 가져왔다”며 이의 폐해를 한 몸에 겪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세력을 찾지 못해 ‘과소대표’되는 노동문제를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과 노조가 합의체적 결정 구조를 가진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를 수용하자고제안했다. 최 이사장은 2011년 정치학자 4명과 함께 펴낸 에서도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를 제한할 수 있는 평등의 이념’이라 규정하고, 노동자와 시민을 구분하면서 진보정치를 노동과만 연결시키지 말고 노동을 보편적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사민주의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사례를 들자면 “미국 뉴딜정책 시기의 민주당과 더 가까운 모델”이라는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대공황으로 인한 대량 실업과 빈곤 등에대응하기 위해 노동자가 스스로 대표하고 보호할 수 있는 노조 조직화를 허용했고, 민주당은 광범한 노동자층을 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확보하면서 진보적 자유주의 정당으로 거듭났다.

송호창 의원, 최태욱 교수(한림국제대학원대) 등 안 의원의 대선 캠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인사들은 독일 기민당을 더 많이 거론한다. 전후 독일 정당들은 조직 노동을내부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계급 갈등을 극복했다. 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노조의 중심세력을 끌어안았다면, 중도 정당인 기민당 안에도 노동위원회가 한 분파로 자리잡았다. 특히 최태욱 교수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의 중도 정당’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내일 심포지엄 토론에서 “자유주의자들이 모인 정당은 태생적으로 중도 정당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중도 보수와 합리적 보수까지 포용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평등 확대를 강조함과 동시에 강자와 라이벌 세력에 대한 태도도 개방적이고 유연해야 한다. 독일 기민당이 대표적이다. 독일의 사회 합의 체제가 가능한 것은 중도에 있는 기민당이 좌·우파 정당들에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연립정부가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도정당론은 왼쪽으로는 진보정의당부터 오른쪽으로는 새누리당의 합리적 보수까지 세력으로 포괄하려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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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8ABD">여러 명의 ‘진보적 자유주의’</font>
<font size="3">야권 재편에서 핵심 화두로</font>
“진보적 자유주의는 안철수 의원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도 굳이 범주화한다면 진보적 자유주의 입장이다.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 개인의 영역에서는 국가가 최대한 간섭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자유주의적 입장이고, 복지나 경제민주화 쪽에서는 국가가 많이 개입해 작용하기를 바라는 게 진보적 입장이다. 정치적 자유를 넘어 사회·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16일 안 의원의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안 의원은 다음날 “저 혼자만의 것이라고 한 적 없다”고 말했다. 담론 차원에서 논의되는 만큼 구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진보적 자유주의는 민주당 안에서도 오래전부터 강조돼왔다. 진보적 자유주의가 앞으로 야권 재편 과정에서 핵심 화두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이념 노선으로 처음 공식화한 이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다. 그는 한나라당에 있던 2000년 이란 책을 썼다. 지난해 대선 전에 펴낸 에서 “당시에는 민주주의와 복지라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되,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경쟁체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민생경제론’을 제시했다. 유럽 복지국가 모델에 주목한 것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인물은 안 의원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최장집 이사장과 장하성 소장이다. 최 이사장은 “실제로는 ‘주저하는 자유주의자’ 또는 ‘행태는 유사 운동권인데 내용은 보수적 자유주의자’이면서 겉으로만 진보성을 과시하는 야당의 전형적 패턴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라고 평했다.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2003년 개혁당, 2010년 국민참여당 창당 때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했다. “다원성과 개인의 창의성을 기본으로 국가가 적극적인 선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사회투자국가론이나 선진통상국가론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천정배 전 의원은 2010년 저서 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유능한 진보 세력이 갖춰야 할 철학적 기반”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민주정권이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에 편승하거나 반목의 과정을 되풀이한 결과,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계급·계층의 갈등이 확대되고 중산층의붕괴가 본격화했다”는 반성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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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의당과는 ‘양당 체제’에 대한 공통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연대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결선투표제가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안 의원은 지난 6월5일 자신의 방에서 ‘옆방 동료’인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과 3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양당 독점 체제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심 의원은 지난 6월11일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정치제도 개혁 없이는 진보정치와 새 정치의 길은 없다”며 양당 체제 극복을 위한 과제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대통령 선거와 광역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 국회 교섭단체제도 폐지 등을 제안했다. 이어 6월18일에는 ‘결선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치개혁연대’ 구성을 제안했다. 심 의원이 본회의 연설에서 “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간 진보정당은 노동중심성 패러다임에 경도 됐다는 비판, 대기업 정규직 정당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근거 있는 비판이다. 협소한 노동정치의 틀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경제·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혁신정당으로 다시 서겠다”고 말한 대목도 눈에 띈다. 각각 진보적 자유주의, 사민주의를 표방했지만 노선이나 문제의식이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현대 유럽의 사민주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 출발은 다르지만 목표는 ‘노동복지국가’다. 둘 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위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가 개입을 얘기한다. 복지국가, 선거제도 개혁 등을 목표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정당과 사민주의를 내건 정당이 연대하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일 수 있다. 두 세력의 정책 공조와 연대 가능성이 거론되는 데는 진보정치의 한계에 봉착한 진보정의당과 세력화를 추진하는 안 의원의 정치적 현실도 맞물려 있다.

<font size="3">안 의원 아직 “당 만들겠다”도 안 해</font>

그러나 두 세력의 연대나 통합을 얘기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양쪽 모두 ‘민생 문제와 관련해 협력할 부분이 있다면’이라거나 ‘양당 체제 극복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를 강조할 뿐이다. 안 의원은 아직 “당을 만들겠다”고 천명하지도 않았다. 진보정의당 관계자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사실 좀 먼 얘기고, 결선투표제는 지난 대선 이후 야권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느냐. 원내 4당인데다 조직도 미약한 우리 당으로서는 생존이 달린 문제나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세력 연대나 정당 통합을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얘기마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진보적 자유주의든 사민주의든, 그것은 좌표일 뿐이다. 최 이사장은 대안 정당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기존 정당 체제에 큰 충격을 가해, 깨질 건 깨지고 경쟁에서 탈락할 건 탈락하는 ‘충격요법’으로 구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심포지엄 발제문은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를 강조하며 끝난다. “(대안 정당은) 반드시 기존 정당으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도 얼마든지 대안정당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목적의식과 조직능력을 포괄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가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적극적 실천 의지, 주체적 역량으로서 ‘비르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좌표는 시작일 뿐, 결국 문제는 누가 하느냐와 할 수 있느냐라는 얘기다. 안 의원은 비르투를 갖고 있는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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