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 이후 무르익기 시작한 대화 분위기가 마침내 꽃망울을 맺었다. 지난 5년여 동안 긴 동면에 빠져 있던 남북관계도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6월12일 장관급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란 꽃을 피워낼 수도 있을 터다. 긴 호흡으로,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조성된 사태와 온 겨레의 지향과 요구로부터, 그리고 남조선 기업가들을 비롯한 각 계층의 절절한 청원을 고려하여, 위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중대 입장을 천명한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6월6일 낮 대변인 명의로 특별담화문을 내어 이같이 발표했다. ‘위임’에 따랐다는 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결정이란 얘기다. 조평통은 담화문에서 “6·15를 계기로 개성공업지구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북남 당국 사이의 회담을 가질 것을 제의한다”며 “회담에서 필요하다면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쪽의 당국 대화 제의를 무지르던 그간의 태도를 바꿔, 전격 남북회담을 제안한 게다.
조평통은 이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국제관광특구에 대한 남조선 기업가들의 방문과 실무접촉을 시급히 실현하며, 북남 민간단체들 사이의 내왕과 접촉,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하도록 할 것을 제의한다”고도 했다. 회담을 기점으로 민간 교류를 포함해 지난 6년여 동안 꽉 막혀 있던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풀자는 뜻이다.
북, 7·4 공동성명 발표 기념 행사 제의
북쪽은 또 “6·15 공동선언 발표 13돌 민족 공동 행사를 실현시키며, 아울러 7·4 공동성명 발표 41돌을 북남 당국의 참가하에 공동으로 기념할 것을 제의한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7·4 공동성명 발표를 기념하는 남북 공동 행사가 열린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왜 하필 7·4 공동성명일까? 2002년 5월을 떠올리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해 5월10일 중국 베이징을 거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전용기편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 창당을 준비하고 있던 박 대통령을 북쪽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초청했기 때문이다. 국빈급 손님이 묶는 북쪽 최고 수준의 영빈관 백화원초대소에서 박 대통령을 맞은 것은 김용순 노동당 비서였다. 예우가, 아주 각별했다.
이날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김영대 북쪽 민화협 회장은 “누구든 민족을 위하고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정견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합쳐나갈 수 있다”고 환영 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이 힘을 합쳐 7·4 남북공동성명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해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공동 발전을 이룩하자”고 화답했다.
방북 사흘째인 5월13일 저녁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화원초대소를 찾았다. 김일성 주석의 아들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만난 게다. 박 대통령이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귀환한 그해 5월14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두 사람은 이날 저녁 7시께부터 배석자 없이 1시간 남짓 대화를 나눈 데 이어 2시간 동안 만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금강산 면회소 설치, 국군포로 생사 확인, 서울 답방 재확인 등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폭넓은 약속을 내놨다. 박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일종의 ‘선물 보따리’를 푼 셈이다. 이날 두 사람은 부친들이 일군 ‘7·4 공동성명의 정신’을 이어받기로 약속했다.
북-미 대화 재개도 시간문제로 보여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밀사로 평양에 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 틀을 잡은 7·4 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남북이 맺은 첫 공식 합의다. 성명에 담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란 통일의 3원칙은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 공동선언의 밑거름이 됐다. 박 대통령으로선, 부친의 업적인 ‘7·4 공동성명’ 기념행사를 하자는 북쪽의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을 터다. 북이 ‘떠보기식’으로 대화를 제안한 게 아니라, 실제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풀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지난 3월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켜 강성국가 건설을 앞당겨나갈 데 대하여’란 문건을 채택했다. 이른바 ‘핵·경제 병진론’을 공식화한 게다. 이튿날인 4월1일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7차 회의를 열어 내각에 국가우주개발국을 신설하는 한편, 내각 총리로 경제전문가인 박봉주를 재발탁했다.
‘핵·경제 병진론’은 북한이 ‘핵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란 결론을 내렸음을 뜻한다. 재래식 군비 경쟁에서 밀리며 체제 위협을 느꼈던 북은 핵무장으로 이를 해소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18일 북 국방위 정책국이 내놓은 성명에서 “최소 핵 억지가 가능해졌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외부의 위협을 막았으니, 다음은 경제발전에 집중할 차례다. 김정은 제1비서는 권력 승계 이후 여러 차례 “다시는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지 않겠다”고 강조해왔다. 박봉주 총리의 재등장도 이런 분위기를 방증한다.
문제는 경제발전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게 미국이란 점이다. 미국과 대화를 해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핵 문제 때문에 빨리 성과를 내기 어렵다. 결국 남북관계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외교안보팀 출신의 한 북한 전문가는 “북은 이미 이런 구도에 따라 지난달 말부터 대화 국면으로 전환을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제1비서의 친서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달했다. 시 주석은 이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쪽에 ‘말이 아닌 행동’을 요구해왔다. 남북 대화가 없이는 북-미 대화도 없다고도 강조했다. 미-중 정상회담을 채 이틀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전격 남북 대화를 제의함으로써, 북한은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 됐다. 북-미 대화 재개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북쪽의 회담 제의 7시간 남짓 만인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문제 등 남북 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남북 장관급 회담을 6월12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또 이를 위한 실무접촉을 위해 판문점 연락사무소 등 남북 간 연락채널을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장관급 회담은 6·15 공동선언의 이행 기구다. 한반도 주변 현안은 물론 경제협력추진위원회·장성급회담 등 정치·경제·군사·사회문화 등 여러 갈래로 나뉜 남북 간 교류협력 문제를 총괄적으로 다루는 협의체다. 장관급 회담을 두고 ‘남북관계의 중추신경망’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북쪽은 6월7일 오전 조평통 대변인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6월9일 개성에서 실무 접촉 △6월7일 오후 2시부터 판문점 적십자 연락 통로 재가동 등의 후속 조치를 밝혔다. 5년여 휴지기를 거쳐, 남북이 마침내 손뼉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가 절실
“(대화의) 틀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북의 제안은 대단히 포괄적이다. 잘만 된다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끊어진 남북관계를 불과 몇 달 안에 통째로 복원시킬 수도 있다. 개성공단·금강산 문제가 풀리고,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고, 장관급 회담을 통해 남북 지도자가 속마음을 나누면, 그다음 수순은 제3차 정상회담이다. 지금은 이런 큰 그림의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다. 과거사에 연연할 게 아니라,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가 절실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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