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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은 혁명”이라는 교수, 인수위로

등록 2013-01-11 07:23 수정 2020-05-02 19:27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4일 김진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을 비롯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9개 분과 간사와 인수위원단 등 추가 인선을 단행했다. 발표는 이날 오후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서울 삼청동에 마련된 인수위 기자실에서 했다. 하지만 준비된 자료에 따라 명단만을 발표했을 뿐 김 위원장도, 배석한 윤창중 대변인도 인선의 배경이나 의미를 설명하지 못했다.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조차 없었다. 여론을 통한 검증을 우회한 ‘밀실 인사’, 여권의 핵심부에서마저 내용을 알지 못했던 ‘밀봉 인사’ 논란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인수위 전문위원, 실무위원, 실무요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인수위 전문위원, 실무위원, 실무요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경제민주화 걸림돌’ 지목된 인물들

김 위원장은 인수위 인선을 발표하며 “이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국정철학과 정책기조 초안을 설정함으로써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인수위 합류 가능성이 점쳐지던 최경환 의원, 종합상황실장으로 대선을 진두지휘한 권영세 전 의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예상보다는 외부 인사 영입 규모가 커졌지만, 인수위의 주요 길목에는 핵심 인사들이 포진했다. 친박 실세의 합류를 최소화했다는 명분과 모양새를 고려하면서도, 실제 정책과 정권 출범의 주도권은 틀어쥐고 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제 관련 분과의 인선이 대표적이다. 경제1·2분과위 간사로 합류한 류성걸·이현재 새누리당 의원보다 각각 국정기획조정분과와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강석훈·안종범 의원이 더 눈길을 받는다. 이들은 여권 내부의 ‘경제민주화’ 논란에서 늘 ‘안티 김종인’의 관점을 취해왔고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모임에서도 ‘걸림돌’로 지목 받은 인물들이다. 이들의 인수위 재기용은 경제민주화 논란에 대한 박 당선인의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재확인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김종인표 경제민주화가 대선 과정에서 사실상 좌초돼 당 내부에서조차 “경제민주화는 끝났다”는 푸념이 나온 뒤다.

2007년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만든 대표적 성장론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 인수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연구원 소속 인사들이 대거 합류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안종범 의원도 연구원 출신이다. 이 밖에도 고용복지분과위 간사로 임명된 최성재 서울대 교수, 옥동석 인천대 교수(국정기획조정), 윤병세 전 외교안보수석·최대석 이화여대교수(외교국방통일),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1), 서승환 연세대 교수(경제2), 이승종 서울대 교수(법질서·사회안전) 등 연구원 소속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게다가 윤창중 대변인에 이어 또다시 극우 인사가 기용된 점은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정무분과위 간사로 낙점된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대표적 뉴라이트 계열학자로 보수 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그는 5·16을 ‘혁명’이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가 참여해 만든 뉴라이트 대한교과서는 논란이 일자 ‘혁명’ 대신 ‘쿠데타’로 수정했지만 “박정희의 등장은 근대화 과제를 강력히 추진할 새로운 리더십을 갖춘 정치집단이 부상하는 토양을 제공했다”고 서술했다. 박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5·16은 쿠데타이면서 혁명”이라며 “단순히 경제적 기적을 이뤘다는 점을 떠나서도 국민들이 자신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그 변화는 상전벽해”라고 거듭 강조했다.

논객이던 윤창중 “보수우파 정치세력 위해 다행”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에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자는 취지의 ‘건국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도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했다. 당시 그는 “건국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그동안 평가절하됐다”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됐기 때문에 자유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상하이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한 것이어서 논란이 거셌다. 박 교수가 지난해 7월 박근혜 캠프에 합류한 시점에 한명의 논객이었던 윤창중 대변인은 칼럼을 통해 “박효종이 박근혜 캠프에 들어간 건 보수우파 정치세력을 위해 참으로 다행스러운 선택” “박근혜 캠프에 참가한 인물들의 머리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관한 이론으로 꽉 무장시키는 데 박효종만 한 소신과 실력을 다 갖춘 적임자가 없다” “박효종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난도질하며 쓰레기통에 처넣는 ‘종북좌파 교과서’부터 문제 삼으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시 써서 지켜냈다”는 등 극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인수위 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국정기획조정분과위 간사로 영입된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도 박 교수와 마찬가지로 바른사회시민회의 출신이다.

대선 직후 ‘100% 대한민국’이나 ‘국민 대통합’ 등의 수사를 거듭한 박 당선인이지만, 정작 통합을 위한 손길은 48%의 반대 여론보다는 이명박 정부 출신 인사들을 향해 내밀었다. 김장수 전 국방장관(외교국방통일분과위 간사), 류성걸 전 기획재정부 차관(경제1분과위 간사), 모철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여성문화분과위 간사) 등 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물이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밖에 당선인 비서실에는 ‘강성 친박’이자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정무팀장으로 합류했다.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의 ‘이미지메이킹’을 맡았던 변추석 국민대 조형대학장은 홍보팀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 출신에게도 손 내밀다

당연하게도 야당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변인조차 인선 배경을 설명하지 못하는 밀봉 인사, 깜깜 인사는 국민에 대한 무례한 태도”라며 “이명박 정부에 이어 또 다른 불통정권의 시작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박효종 교수의 합류를 두고는 “왜곡된 역사 인식에 앞장서온 분이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새 정부 인수위의 정무분과 간사를 맡는 것이 타당한지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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