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격적으로 로켓을 발사한 12월12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은 물론 회의 참석자들의 표정이 아주 어둡다. 사태의 심각성 때문일까, 정보 판단 실패로‘안보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난 게 민망해서일까.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주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위성이라 하더라도 발사체 자체가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제재 대상으로 규정한다. 북한의 이번 장거리 로켓은 성공했다. 3단 모두 성공적으로 분리되었고, 궤도 진입에도 성공했다. 위성의 기술 수준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그것을 실어간 로켓의 성능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북한이 보여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묻는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풍’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발사 시기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난 4월 북한의 로켓 발사가 실패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은 이후 추가 발사를 준비해왔다. 그런데 미국이 대선 국면에 로켓을 발사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8월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가 북한을 비밀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12월17일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1주기다. 김정은 체제 출범 1년이기도 하다. 김정은 체제로선 인민들에게 실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면, 로켓 발사 시기는 11월 초 미국 대선 직후부터 12월17일 전후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 2기가 시작되는 2013년 1월 전에 발사하는 게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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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로켓 발사는 우리 대선에 중요한 변수다. 다만 과장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날, 우리 주식시장은? 평상을 유지했다. 오히려 올랐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불감증이라고 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왜 북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겠는가? 다만 축적된 경험을 기초로 변수의 영향력을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국민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연평도 사태처럼 최악의 국면에서도 우리 국민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당시 영변 폭격설이 제기되었을 때, 사재기로 폭발한 불안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복된 경험을 토대로,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작용한다. 불감증이 아니라 합리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후보 쪽에서 안보 불안 프레임을 들고 나온 것은 오판이다. 최근 몇 번의 선거에서 북한의 도발 변수는 결과적으로 보수정당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왜 그런가? 새누리당은 과거 전통적 시각에서 안보 불감증을 비판하고, 불안 심리를 자극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알 만큼 안다. 대부분의 국민은 합리적인데, 시대를 착각한 보수 정치인들만 흥분하고,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대응하게 되고, 오히려 그것이 불안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안보 무능 프레임이다. 보수에게 오히려 안보 이슈가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이 도발했을 때,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 보수인 이명박 정부는 보수가 얼마나 안보에 무능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그것도 예외 없이 일관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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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실패다. 북한이 기술적 결함을 이유로 발사 시간을 연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로켓을 해체하고 아마도 올해 안에 발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이 보수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그날, 북한은 로켓을 발사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보 판단은 실력이다. 발사대가 설치된 지점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체제에서 어떻게 이런 실수가 발생할 수 있는가? 첩보에서 정보를 가리는 것은 소음에서 신호를 분리해내는 작업이다. 위성사진은 그 자체가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해석되어야 한다. 어떻게 수리 과정을 해체 과정으로 판정할 수 있을까? 과거 필자도 정부에서 일해봤고, 위성사진을 둘러싼 정보 평가회의를 해봐서 안다. 이전 정부에 비해 이명박 정부의 정보 역량이 후퇴했다. 그것이 핵심이다. 관련국들의 정보 공유에도 구멍이 뚫렸다. 한-중 관계가 악화돼, 중국이 고급 정보를 우리 정부에 주지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미 양국의 정보 공유다. 이명박 정부는 대미 일변도 정책이라고 비판받을 정도로 한-미 관계가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부 외신은 미국이 고급 정보를 한국에 제공하지 않아 한국만 발사 가능성을 몰랐다고 보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일반적인 친구 관계에서도 입이 가벼운 사람에게는 중요한 정보를 알리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중요 정보를 흘린 사례가 적지 않다. 가장 최근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국 NSC 관계자의 비밀 방북을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에 흘렸다. 왜 흘리는가? 정책이 없으면 정보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기에, 그만큼 북한 관련 정보를 정책적으로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어떻게 한국 정부에 고급 정보를 주겠는가? 정부 내 정보 공유 체계의 붕괴나 분석 과정의 생략이 정보 실패의 또 다른 원인일 것이다. 올바른 정보 판단 과정이 생략되면 적절한 정책 대응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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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변함없이 안보 무능을 드러낸 탓에, 북한의 로켓 발사는 오히려 보수 세력에게 부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박근혜 후보 역시 노무현 정부 비판 프레임에 갇혀,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하지 않은 게 독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편들고 두둔한다는 것은 곧바로 안보 무능을 되풀이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의 성능도 향상시켰고, 운반 수단인 로켓의 사거리도 연장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실체로 다가왔다. 협상 중단이 가져온 재앙적 결과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나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이 실패했다.
한-미 양국의 선택은 세 가지다. 군사적 개입, 경제제재, 그리고 외교적 협상이다. 군사적 개입이야 애초부터 제외다. 일부 보수 세력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떠들지만, 이성적인 다수의 우리 국민이나 국제사회는 그런 주장을 정신 나간 것으로 여긴다. 경제제재는 실효성 없음이 밝혀졌다. 박근혜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퍼주기를 비판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안 퍼줬는데도 상황이 악화되었다. 퍼주기 주장 자체가 악의적인 이데올로기지만, 스스로 자기 논리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이다.
결국 외교적 협상이 중요하다. 물론 협상만 재개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북핵 능력은 더욱 향상되었고, 국제환경은 더 복잡해졌다. 이제 핵무기만 아니라, 북한의 운반 수단인 장거리 로켓까지도 협상 의제에 포함해야 한다. 포괄적 협상이 불가피하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협상 과정도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전진과 후퇴를 거듭할 것이다. 그러나 협상은 과정이다. 장기간의 과정에서 목표를 정확히 인식하고, 과정을 유능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념에 사로잡혀 무능한 안보를 반복할 후보가 아니라, 현실에 기초해 협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를 선택해야 한다.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지만, 한 걸음이라도 전진하려는 사람들이 정부를 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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