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야수의 세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딸들이 (정치인의 자녀로서) 얼굴이 두꺼워져야 한다는 점을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오바마 부부는 13살과 11살 된 두 딸을 두고 있다. 2008년 대선 과정에서는 오바마 후보의 홍보를 위해 캠프 차원에서 가족의 면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래서일까.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뿐 아니라 어린 딸들도 자주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 2009년에는 한 비영리단체가 ‘오바마의 딸들은 영양가 있는 학교급식을 먹는데, 왜 난 안 되지?’라는 문구의 광고 캠페인을 벌여 백악관이 발칵 뒤집힌 일도 있다. “얼굴이 두꺼워져야 한다”는 미셸 오바마의 말은 ‘야수의 세계’에 있는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아이들이 미래에 받을지 모르는 고통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으로 읽힌다.
야수의 세계, 인간의 언어
연말 대선을 6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여야 대선주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 가족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정치의 ‘야수성’으로 따지면 한국이 미국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정치인, 그것도 ‘대선주자 아버지’를 둔 자녀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건 기대감일까, 두려움일까. 최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장녀 다혜씨가 간접적인 방식으로 심경을 밝혔다. 그는 6월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열린 출마 선언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행사를 기획한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를 통해 “아버지의 출마는 개인적으로 반대”라는 반응을 내놨다. 탁 교수는 계속 참석을 권유했지만 ‘노무현 아저씨’를 언급한 다혜씨 앞에서 뜻을 접었다고 한다. “노무현 아저씨 가족을 보셨잖아요? 그게 너무 눈물 나고 슬프고 무서워요. 아버지의 결정이 저는 싫지만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와 제 아이, 그리고 우리 식구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건 정치라는 ‘야수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의 언어’였다. 하기야 굴곡진 현대사를 지나는 동안 대통령 자녀들의 삶이 대체로 그랬다. 양친을 모두 총탄에 잃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역시 비극적인 죽음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자녀들은 극단적인 사례다. 박 전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동시에 여야를 통틀어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녀도 없다. 동생인 박근령씨와는 정수장학회 문제 등으로 불화해왔다. 지금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막내동생 박지만씨는 과거 마약 투약 등 방황을 거듭하기도 했다. 끝내 미혼으로 남은 박 전 위원장의 심리를 재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단서는 존재한다. 그는 1993년 발간된 에세이집을 통해 “권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라는 옛 일기의 한 대목을 소개했다. 책 제목은 이다.
부친 덕에 호가호위했거나 부당한 권한을 누린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는 아버지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히딩크 사진 논란’의 당사자다. 공적으로 부여된 권력의 사적 남용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어쩌면 예고된 비극이었다. 시형씨는 서울 내곡동 사저 파문에도 등장한다. 1673억원에 이르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녀들은 낮춰잡아도 수백억원대 자산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녀들은 모두 재벌가와 혼맥으로 이어져 있다. 최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문민정부 시절 ‘소통령’으로 통했다.
비서실장도 모르는 김두관 자녀들
대통령의 가족이 생활인으로서의 소소한 행복까지 바라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녀들은 부친과 마찬가지로 군사정권의 모진 탄압과 고문을 받았고, DJ 재임 막바지에는 개인 비리 등으로 논란을 불렀다. 박근혜 전 위원장도 대선 후보 검증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산 형성 과정’이 논란이 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통령 혹은 대선주자의 자녀들은 늘 혹독한 검증과 정쟁의 도마에 올랐다. 아버지의 대선 출마에 “개인적으로 반대한다”는 다혜씨의 고백은 문 고문의 출마 선언 자체만큼이나 화제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누나인 다혜씨의 선택과 달리 문 고문의 차남 준용씨는 아버지의 출마 선언을 곁에서 응원했다. 같은 날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그는 “청렴결백하다는 아버지에 대한 평판은 한두 번의 행동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무척 자랑스럽다”고 했다. 문 고문은 “어린 시절 반찬 투정을 하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이후 어찌나 후회가 되던지 이후에는 어떤 일이든 아이들의 뜻을 존중해왔다”고 밝혔다. 아들이 고3 수험생 시절 인문계에서 미대 진학 쪽으로 진로를 바꾼 과정에서도 문 고문은 “걱정스러웠지만 받아들였다”고 했다. 준용씨는 현재 영상 콘텐츠를 다루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시간강사로 대학에도 출강하고 있다. 그는 이날 행사에서 “논산훈련소 조교로 군복무를 마쳤다”며 “01군번인데 상병을 달고 군 생활이 편해진 후에야 아버지가 청와대 민정수석이 됐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즉석에서 조교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문 고문 쪽은 후보의 가족, 특히 자녀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러 차례 요청한 준용씨와의 인터뷰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문 고문은 “저로 인해 가족까지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선 김두관 경남도지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장에서 군수로, 장관과 도지사로 이어지는 정치 인생에서 김 지사는 숱한 선거에 떨어졌고 긴 시간을 야인으로 살았다. 큰딸과 막내아들은 주로 아내가 키웠다. 측근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이런 점 때문에 김 지사는 자녀들에게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평범한 의미에서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는 부채감은 유별난 보호 심리로 이어졌다. ‘정치인 김두관’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공사의 구분’을 금도로 삼고 있다고 전해진다. 가족이 상처 입을 수 있는 빌미를 원천적으로 없애자는 생각에서다. 장충남 경남도청 비서실장은 “지금까지 김 지사의 자녀들을 직접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른다”며 “도정과 관련된 지사의 업무를 보좌해야 하는 처지에서 그 자녀들을 개인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2010년 도지사 선거 당시 김 지사의 아들 동완씨는 수도권의 한 군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김 지사의 한 측근은 “김 지사의 아들이 근무했던 부대의 부대장도 아들이 전역한 뒤에야 그의 아버지가 김두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며 “그만큼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했다”고 전했다.
아버지의 꿈을 잇거나 돕거나
축구광이기도 한 아들 동완씨는 현재 스포츠마케팅 관련 학과 전공을 위해 영국에 체류하고 있다. 그건 공교롭게도 김두관 지사 본인의 꿈이기도 했다. 김 지사는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고등학생 시절 스포츠해설가와 프로모터를 겸한 직업을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MBC 에 출연한 김 지사가 장래 희망을 묻는 차인태 당시 아나운서의 질문에 “체육학과를 가고 싶다”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일까. 김 지사는 남해군수 재임 시절 스포츠 관련 사업에 공을 들였다. 김 지사가 도입한 남해군의 천연잔디 생산 사업은 지자체들 중에서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현재 남해군에는 천연잔디를 갖춘 축구장만 7곳, 야구장이 3곳이다. 남해군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덴마크 축구대표팀의 전지훈련도 유치했다.
김 지사의 어린 시절 꿈을 아들이 이어가고 있다면, 맞딸 서연씨는 ‘아버지의 현재’와 조금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김 지사는 여야 대선주자들 가운데서도 중국과의 관계에 공을 많이 들여온 ‘지중파’다. 2004년에는 베이징에 8개월 가량 머물며 중국어와 중국의 역사, 정치 현실 등을 공부했다. 김 지사는 딸에게 중국 유학을 권유하겠다는 생각을 당시 품었다고 한다. 딸 서연씨는 김 지사의 뜻대로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중국은행’ 서울지사에 근무하고 있다. 중국 자매지인 은 2010년 김 지사의 도지사 당선 소식과 딸의 중국 유학 사실 등을 전하며 “김두관 지사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중국을 가장 잘 아는 정치 지도자”라고 호평했다. 한 측근은 “서연씨는 아버지의 길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잘 표명하지 않는 신중한 성격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부친의 선택을 존중하고 따르는 편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원조 딸바보’를 자처한다. 손 고문이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고 있던 때 큰딸이 태어났다. 손 고문은 “첫딸이 태어난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공권력을 피해 잠행하던 시절이었다. 손 고문은 가족이 그리울 때면 밤늦게 집을 찾아가 창문 틈으로 쪽지를 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공원 등지에서 가족과 조우하곤 했다. 딸이 말을 시작하자 아이가 한 말들을 수첩에 적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펼쳐보며 즐거워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가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대선 슬로건으로 제시한 것도 손 고문의 가정적인 면모가 반영된 측면이 크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아버지의 길과 자식은 길은 다르다
현재 손 고문의 두 딸은 문화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장녀 원정씨는 연극이론을 연구하는 평론가다. 차녀 원평씨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그가 2005년 연출한 저예산 독립영화 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우수상,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당시 KBS 에 소개되기도 했다. 손 고문의 큰사위인 김동현씨는 연극연출가이자 극단 대표다. 김씨는 연극 등의 작품을 연출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과 김상열연극상을 각각 받았다. 그는 “장인어른의 확고한 정치철학을 동시대를 사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지지한다”면서도 “그건 결국 장인어른의 길이고 다른 가족은 나름대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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