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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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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치닫는 MB씨의 비리 드라마

방통대군·왕차관 등 대통령의 남자들, 파이시티 연루 사태에
다나카 전 일본 총리 몰락 드라마 겹쳐…
‘산 권력’ 기소한 일본 검찰 역할 빼면, 2012년 이명박에게 1974년 다나카가 보인다
등록 2012-05-05 19:01 수정 2020-05-03 04:26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사진공동취재단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사진공동취재단

4년 전 그에게서 일본 언론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떠올렸다.
“일본 언론들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다나카 가쿠에이(1918~93) 전 일본 총리가 서로 닮은꼴이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과 은 21일 1면 하단의 칼럼난을 통해 두 사람의 애칭이 같다는 점을 지적했다. 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결정된 이명박씨는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컴도저)’라는 애칭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이라면 그 이름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라고 썼다. 도 ‘(이명박 당선자의) 별명인 컴퓨터 달린 불도저는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 똑같다’고 언급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건설업에서 돈을 벌어 정계로 진출한 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출세 과정이 서로 흡사하다고 두 신문은 분석했다. 특히 은 ‘(이 당선자가) 돈에 얽힌 의혹이 따라다니는 것도 가쿠에이와 통한다’며 ‘(BBK 문제에 얽힌) 의혹으로 이씨에 대한 재조사가 실시된다고 하는데 결말까지 가쿠에이와 비슷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보도했다.”( 2007년 12월22일 5면 참조)

토건족 주연 드라마, 각론에 숨은 악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시종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류우종 <한겨레>기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시종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류우종 <한겨레>기자

결국 일본 언론의 예언이 일부 들어맞았다. 언론이 ‘방통대군’과 ‘왕차관’으로 불러왔던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이 검찰의 작두 앞에 섰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대규모 복합유통센터(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4월26일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르면 5월1일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앞서 4월25일 박 전 차관 집을 압수수색했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정치드라마.” 한 신문이 최근 수사를 두고 한 표현이다. 적어도 이번 수사에서 이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스토리, 주연, 조연이 모두 존재한다. 이 드라마는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일본 총리가 만든 드라마와 절반은 같고, 절반은 다르다.

일단, 정권 실세가 부동산 개발에 연루돼 토건족한테서 돈을 받았다는 것이 드라마의 큰 스토리다. 주연은 또다시 토건 마피아와 토건 관료다. 양재동 화물터미널은 1984년 지어졌다. 화물터미널이 화수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토건족이 있었다. 토건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이상한 안건이 상정됐다. ‘대규모 점포 등 허용’ 자문 안건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이었고, 박영준 전 차관은 정무국장,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행정2부시장이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당시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 회장이었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그것이 공무원이 악을 행하는 방식이다. 난마처럼 얽힌 법의 그물을 뚫고,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 관련 공무원들은 토건족 특혜 방안을 개발해냈다. 법률적으로 화물터미널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점포를 지을 수 있게 도시계획을 변경한다는 것이 뼈대였다. 배보다 배꼽이 큰 터미널을 만들자는 취지다. 도시계획위원들은 “교통 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토건 관료들은 멈추지 않았다. 터미널 부지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을 400%로 올린 안건을 며칠 뒤 또 상정해 통과시켰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을 50일 앞둔 2006년 5월 이 안건에 결재 사인을 했다. 서울시는 5월11일 도시계획 세부시설 변경 결정 고시를 했다. 오세훈 전 시장도 도움을 보탰다. 토건 관료들은 오피스텔도 터미널 부대시설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최종 파이시티 인허가 안건이 2008년 10월 통과됐고, 서초구청이 2009년 11월 건축허가를 내렸다. 총사업규모 2조4천억원으로 추정되는 파이시티 사업은 이렇게 태어났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2005년 12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ㅇ 대표에게서 돈 받은 시점도 인허가 과정인 2008년쯤으로 추정한다.

2008년 청와대에서 웃으며 보낸 그들의 좋았던 시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왼쪽)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연루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8년 청와대에서 웃으며 보낸 그들의 좋았던 시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왼쪽)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연루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여야가 실체 규명에 심드렁한 이유

토건족에게 이 방식이 낯설지 않다. 경기도 광주시 공용터미널 사업(873호 이슈추적 ‘이토록 비밀스럽고 기습적인 공격’ 참조)의 경우가 파이시티와 똑같다. 경기도 광주시는 2007년 9월 일부 도시계획위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공용터미널 건축허가를 냈다. 파이시티처럼, 배보다 배꼽이 큰 터미널이다. 지금 터미널에는 7645㎡의 이마트 점포와 약 2천㎡의 이용객이 거의 없는 텅 빈 여객청사가 들어서 있다.

경기도 광주시와 다른 건 파이시티 로비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를 보면, ㅇ 대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보고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법)으로 수년간 1조5천억원을 빌렸다. 프로젝트 심사 과정은 부실했다. 이후 건축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빌린 돈에 대한 이자 부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채권단은 2010년 파이시티에 대해 파산 신청을 냈다. 포스코건설이 시공사로 재지정됐다. ㅇ 대표는 “최 전 위원장에게 상납하던 돈이 끊기고 파이시티 사업 지분을 넘기라는 협박에 시달렸다”고 주장한다. ㅇ 대표는 이 중 61억원을 브로커에게 건넸고, 브로커가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건넸다. 최 전 위원장이 정확히 언제, 얼마큼의 돈을, 어떤 명목으로 받았는지가 추가로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실제 대선 자금으로 쓰였는지도 궁금한 점이다. 박 전 차관은 아예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정치권이 요동치는 것도 다나카 가쿠에이 드라마와 닮았다. 최 전 위원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말을 계속 바꿨다. “돈을 주고받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4월22일 에 해명)고 했다가 “(브로커) ㅇ씨가 여유가 있어 지원을 해줬다. MB(이명박 대통령)와 직접 협조는 아니라도, 내가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폭탄선언이다. 자신이 받은 돈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이었다는 취지다. 청와대는 해명을 거부했으나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 대행은 트위터에 “나 혼자 죽을 수 없어! 이런 걸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최 전 위원장은 이후 “개인 용도로 썼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여야 모두 겉으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4월25일 충북도당에서 최 전 위원장 사건에 대해 “놀랍고 우려스러운 일이다. 검찰에서 이 문제는 철저하게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별말이 없다. 이들은 ‘MB’ 비리가 박 비대위원장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박 위원장이 오래전부터 이명박 정권과 선긋기를 해왔다는 것이 판단 근거다.

야당은 목청은 높이지만 속은 심드렁하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 전 위원장 사건은) 당연히 정국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면서도 “박 비대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선긋기를 해왔다는 이미지가 있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이 사건이 박 위원장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우리의 딜레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가지 않는 선에서 검찰이 적당히 선긋기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마, 검찰이 마지막 반전 만들까?

한국과 일본 두 드라마의 결정적 차이가 또 있다. 조연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1976년 미국 록히드사로부터 5억엔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산 권력’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 기소했다. 일본 최고재판소(우리나라의 대법원)는 1995년 유죄를 확정했다.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정권 봐주기 수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은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당시 BBK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다. 검찰은 2007년 12월5일 증거가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며칠 뒤 BBK 동영상이 공개됐지만 검찰은 결과를 바꾸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최재경 특수1부장 등 3명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최재경 검사장 등 수사팀 검사들은 ‘수사팀이 김경준씨를 회유한 의혹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 에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가 패소당하기도 했다. 권재진 법무장관은 아예 사건 연루자다.

한국 신문의 법조 기사는 냉정한 3인칭 시점의 문장으로 작성된다. 그 문장에서 검찰은 객관적 정보 제공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관련된 사건에서 한국 검찰은, 객관적 조사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자라는 불신이 여전하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5월1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선다. 4년 전 일본 언론의 기사가 얼마나 현실과 일치하는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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